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허나 마음만 앞섰을 뿐이다.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 안달복달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얼른 정신을 차렸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평생 자식과 덜거덕거리는 불행한 저질 체력으로 살 뻔했다. 고달픈 육아만큼 여자의 정신과 체력을 갉아먹는 일도 없으니까. 내가 택한 최선의 부모 노릇은 “엄마나 잘 살자”였다.
--- p.6 「엄마로 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중에서
임신과 출산 경험을 쓰면서 어이가 없었다. 26년이나 지난 옛일이다. 세상이 두 번 넘게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토록 생생할 수가 있나! 오래 깊이 잠들었던 사람이 눈을 번쩍 뜬 것 같았다. 머릿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가 시퍼런 감자 싹처럼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그만큼 엄마가 된다는 사건은 뼈에 아로새겨진 강렬한 경험인가 보다.
--- p.35 「서툴고 불안한 초보 엄마 분투기」 중에서
그런데 왜 아이랑 함께 스케이트를 타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왜 추운 관중석에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만 했을까? 자아로 시선을 돌리기엔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훨씬 강했기 때문이리라. 만약 스케이트를 신은 엄마가 얼음판을 신나게 지치는 걸 봤다면? 아이가 흥미를 갖고 좀 더 스케이트를 즐겼을까? 아니, 오히려 내가 그 재미에 빠져들어 일찌감치 ‘마녀체력’이 되었을지도.
--- p.82 「워킹맘, 아이 운동시키기 작전」 중에서
자식한테 목매지 말고,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서 잘 사는 엄마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랄 것인가.
아이한테 가졌던 미안함이나 죄책감 따위는 개한테 줘버렸다. 대신 즐겁게 회사에 출근하고 열심히 일에 몰두했다. 아이더러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먼저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비싼 옷이나 신발은 사 주지 않았다. 좋은 영화, 전시회, 뮤지컬을 볼 때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사회의 약자들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 주었다. 철인3종 대회에 나갈 때마다 가능하면 아이를 동행하거나 자원봉사를 시켰다.
--- p.149 「우리, 자식한테 목매지 말고 삽시다」 중에서
우선, 사랑하는 마음과 번거로운 감정이 별개라는 것부터 인정했다. 부채 의식이 있던 엄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만간 독립할지 모르니 집에 있는 동안 잘해 주라고? 천만의 말씀. 아들이 언제까지 우리와 함께 살지는 신만이 아실 일이다. 비록 내 집이지만, 맘대로 방을 빼라고 할 수 없는 세입자가 자식 아닌가. 남이라면 돈으로 해결하거나 계약서를 쓰면 된다.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집을 나눠 쓰는 구성원끼리 평화롭게 살기 위한 규칙이 필요한 건지도 몰랐다.
--- p.198 「다 큰 자식과 한집에서 사는 법」 중에서
희생하고 물러서고 양보하는 엄마로 살기 싫다. 생기 넘치고, 하고 싶은 거 많고, 도전하는 엄마로 살고 싶다. 엄마가 돼서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냐고? 그럼 좀 어떤가.
--- p.221 「엄마 밥을 제일 먼저 풀 거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