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을 통한 학습의 필요성을 견습공이 노련한 대장장이가 되는 과정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실무 경험(특정 분야의 비결, 좋은 습관과 태도를 익히는 것)은 오로지 행동의 반복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다. 실무 지식을 얻고 숙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구체적인 현실과 맞닥뜨려야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한 학습에는 긴 시간이 든다.
--- 「1. 우리는 어떻게 숙련된 대장장이가 될까?」 중에서
학습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대개 부정적인 경험이다. 아무리 경험이 풍부하고 공부를 오래 한 사람도 실수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한 이후의 내가 가지는 태도이다. 실수를 통해 나를 반성하고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2.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중에서
하지만 실수가 학습의 유일한 도구는 아니다. 긍정적인 경험의 대가로 주어지는 재인식, 감사, 성공, 기쁨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이때의 학습은 더 유하고, 순탄하다. 그러나 이러한 행복한 경험도 ‘부정의 작업’이 있어야 발전이 있다. 새로운 것과 직면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우리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재구성되어야 하며, 우리의 사유나 기준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 「3. 우리는 실수를 통해서만 배울까?」 중에서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청소년기에 대해 조명한다. 청소년기는 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통로이다. 어른의 보호와 권위를 벗어나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과도기로, 외부에서 가하는 법칙을 재정립하고 그것의 합리성과 불합리성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시기이다. 이때 부모 또는 학교가 정한 규칙을 위반하기도 하는데, 위반을 통해 한계를 넘음으로써, 우리는 고유한 개별성을 발견한다. 이 시기의 불확실성은 미래의 그것을 앞서 체험하는 단계이다.
--- 「4. 청소년기를 왜 위기의 시기라고 할까?」 중에서
이처럼 청소년기는 의도적으로 경험하는 시기이다. 나의 한계와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경험한다. 만약 내가 첫 경험을 하거나 어떤 약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건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이다. 외부세계와 타인과 부딪쳐 자신에 대한 앎이 최종적인 목표이다. 또한, 내가 존재함을 느끼고, 진정으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시도이다. 이를 통해, 실패와 성공은 ‘나의’ 행동에 대한 결과이고, 기쁨과 고통은 ‘내가’ 위험을 감수한 결과임을 깨달아야 한다.
--- 「5. 과학적 경험이란 무엇일까?」 중에서
과학적 경험, 즉 과학 실험은 경험의 주체인 과학자에 대한 학습이 아니라, 그 외부, 즉 현실, 자연 또는 사회의 구조와 법칙에 대해 알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여기서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대조하고 있는데, 과학실험의 목적은 이론의 약화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 「6. 과학적 경험이란 무엇일까?」 중에서
과연 내가 나를 알기 위해 과학자처럼 나를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도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화하고, 나와 거리를 두고, 순수한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내가 나에 대해 배우는 것은 언제나 내가 아닌 것(세상과 타인)과의 관계이다.
--- 「7. 나는 내 경험의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중에서
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일까? 나라는 존재는 경험을 통해 변화한다. 경험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경험이 나를 바꾸어 놓는 것에 동의한다는 뜻과 같다. 이렇듯 인간은 진정한 경험 속에서 나의 바깥에서 존재하고, 이로부터 나라는 존재가 형성된다. 이러한 학습은 무한하다. 인간의 가능성이 무한하고. 세상은 무한한 다양성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무한함 속에서 인간은 무한히 변화하는 존재이다.
--- 「8. 나는 물질일까?」 중에서
내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에 따라 조정된다. 어떤 경험이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나이며, 타인이 아니다. 또한, 성 경험은 나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건 아니다. 모든 경험에는 위험성이 따르고, 경험의 주체인 나는 그러한 위험을 감수한다. 따라서 특히 청소년기에는 절제와 신중함을 길러야 하는데, 나 자신과 예민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9. 나의 정체성은 누가 결정할까?」 중에서
경험은 사건이다. 내가 ‘수행’한 경험(사건)이 결국 ‘내 것’이 되면서 진정한 경험이 된다. 저자는 사건이 ‘만남’을 발생시켜야만 비로소 경험이 된다고 한다. 예로 트라우마로 남는 비극적인 경험을 들고 있는데, 이런 사건은 한 개인을 파괴하기 때문에 제 것으로 삼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사람들은 고유한 능력을 더는 느끼지 못하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세상에 속할 수 없다. 그러나 타인과의 공유를 통해 세상에 다시 속할 수 있게 된다.
--- 「10. 경험이 없는 시간도 존재할까?」 중에서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이 좋고 나쁜지를 알려주는 도덕이 아니라, 좋고 나쁜 것들을 상대화하여 비교하는 것을 돕는다. 따라서 윤리적인 감각을 길러주는 것이다. ‘노련한 사람’은 세상에 위치할 줄 아는 사람이고, 경험을 공유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세상에 속하는 사람인 것이다.
--- 「11. 경험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까?」 중에서
저자는 정체성을 고체처럼 단단한 정체성, 액체처럼 유동적인 정체성, 그리고 플라스틱처럼 가변적인 정체성으로 구분한다. 타인과 외부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길 거부하는 고정되고 닫힌 정체성인 고체 정체성과 형태와 기준이 없어 타인, 집단,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액체 정체성을 지양하고, 플라스틱처럼 변화에 열려있으면서도 타인의 조종은 능동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유연한 정체성을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 「12. 융통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중에서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자기 존재를, 그리고 경험을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를 예술가의 그것에 비교한다. 장인(내가 원하는 것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 것을 찾는)과 실험자(나를 알기 위해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하며 여러 가설을 검증하려는)의 태도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것에 항상 열린 자세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노력하고, 미리 세운 계획 없이 물질을 점유하고, 나의 고유한 감각의 끈을 놓지 않고 상처받을 것을 받아들이는 예술가의 태도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태도라고 말한다.
--- 「13. 자기 존재의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