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전신 크기의 매우 잘생긴 젊은 남자 초상화였다. 어둡고 날씬하고 우아한 남성으로 이 세기 초에는 많이들 입던 것 같았지만 당시에는 구식인 의상을 입고 있었다. 흰 가죽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가죽장화, 담황색 조끼와 초콜릿 색 코트 차림이었고, 긴 머리는 뒤로 빗어 넘긴 스타일이었다. 이목구비가 눈에 띄게 품위 있고 섬세했다. 그러면서도 그저 멋쟁이나 세련된 남성 부류와는 구별되는 결의와 열정이 묻어났다. 그 초상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종종 이런 경탄의 말을 내뱉곤 했다. “정말 놀랍도록 잘생긴 남자군요!” 그러고 나서 “얼굴이 정말 영리해 보여요!”가 이어졌다. 이탈리아 사냥개 한 마리가 남자 옆에 서 있고, 배경에는 가느다란 기둥들과 풍성한 휘장이 보였다. 그러나 장식품이 사치스럽고 미모가 세련되긴 했어도, 그 달걀형 얼굴에는 남성다운 힘이 느껴졌다. 매우 개성 넘치는 크고 그늘진 눈에는 불같은 열정이 보였기 때문에 혹 묻어날 수 있는 여성스러운 기운을 상쇄하고 있었다.
--- p.27~28
아름답게 웨인스코트로 장식된 방의 안쪽 끝 난로에 장작불이 낮게 타고 있었다. 난로 근처에는 은제 양촛대에 네 개의 작은 초가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그곳에 독특해 보이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의 등 뒤 어두운 웨인스코트, 드넓은 방, 그 구석에 앉아 있는 인물의 얼굴과 몸에 강렬하게 내리꽂히는 불빛. 그 빛이 정교하게 그린 네덜란드 초상화처럼 힘차고 기이한 양각을 만들어냈다. 나는 한동안 오로지 그 인물만 바라보았다.
대리석 같은 얼굴, 무서운 조각상 같은 표정, 그리고 노인치고는 매우 생생하게 빛나는 기이한 눈, 그 독특함은 바라볼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머리가 순은색으로 길게 터럭을 이루어 관자놀이에서부터 거의 어깨까지 닿아 있었지만, 눈썹은 여전히 매우 검었기 때문이었다.
--- p.363~364
삼촌은 대화에 여유가 있고 세련되었으며 감상적인 윤기가 있으면서도 차가웠다. 그러나 프랑스 시구나 신선한 문구 등을 인용하는 달변가의 그런 인위적인 대화 가운데, 한 번씩 한 줄기 분노의 빛처럼 음울한 종교적 의견을 불쑥 개진하곤 했다. 나는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고통의 전율처럼 그런 면모가 꾸며낸 겉치레인지 진솔한 감정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큰 눈의 빛깔은 매우 독특했다. 나는 그걸 그저 반질반질한 금속 표면에 닿는 강렬한 달빛의 광채로밖에 달리 비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그것도 아니다. 그것은 희게 빛났고 갑자기 얼이 빠지기도 했다. 그런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토머스 무어의 시구가 생각났다.
오, 그대 죽은 자들이여! 오, 죽은 그대들이여! 우리는 그저 그대들이 뿜는 눈빛으로 알 수 있을 뿐!
--- p.489~490
그 쪽지들을 다시 접어 넣고 있던 순간 무언가 내 뒤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 나는 도대체 알 수 없다. 나는 침대를 등지고 선 상태였다. 그 어떤 소리도 들은 기억이 없다. 나는 본능적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길고 흰 모닝가운을 입은 사일러스 삼촌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나왔다. 그러더니 두세 발자국 재빠르고 조용한 걸음으로 내 뒤에 섰다. 송장 같은 찌푸린 인상과 억지웃음. 키가 크고 마른 그는 이마에 붕대를 칭칭 감은 기이한 모습으로 한순간 날 만지려는 듯 붕대를 감은 뻣뻣한 팔을 내 어깨 위로 뻗었다. 그러나 그 길고 가느다란 손은 성경책을 낚아챘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뱀이 그녀를 꾀므로 그녀가 먹었나이다.”
그리고 그는 한순간 멈춰 있다가 창가로 미끄러져 나아가 한밤의 전경을 내다보는 것 같았다. 밤바람이 차가웠으나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여전히 완고한 찌푸린 인상, 선웃음의 표정으로 몇 분간 더 밖을 내다보더니, 크게 한숨을 쉬고 나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얼굴은 얼어붙은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향했다.
--- p.535~536
그때 그것은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최면술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의 본성은 나로서는 이해 불가능했다. 그는 내가 나 자신 안에서, 또는 다른 사람에게서 파악한 보편적 인간의 특성인 고귀함이나 신선함, 부드러움, 가벼움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연민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일이 대리석 조각에 하는 것만큼이나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는 마치 유령이 인간의 몸을 빌려 나타나듯, 타인의 도덕 체계에 자신의 대화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 그의 육신에는 미식가의 관능성이 있었고, 그것이 그가 가진 인간적 성질의 전부인 것 같았다. 그 반투명한 것 같은 육신을 통해 나는 이따금 그의 내면적 삶의 빛, 혹은 섬광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p.639~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