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보는 앞의 두 관점 중에서 사회학이 취하는 관점은 후자다. 교통사고 당사자는 개인들이지만 그 개인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즉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다른 요인들도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이 요인들은 운전 당사자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이미 한 사회에 갖추어져 있는 조건들이고 이 조건들 속에서 운전이라는 개인의 행위가 이루어진다. 사회학은 바로 이런 조건들에 관심을 갖는다. 사람들이 ‘당신이 운전을 잘못했기 때문이야’라고 지적할 때, 사회학은 그 사람의 과실 외에도 그렇게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요인들이 혹시 있지는 않은지 살펴본다.
--- pp.5~6
“사회로 진출하는 졸업생 여러분.”
“그 사람은 사회생활을 잘한다.”
“사회로 복귀한다.”
첫 번째 표현은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흔히 듣는 문장이다. 두 번째는 회사에 잘 적응해서 다니는 사람을 말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세 번째 것은 군대나 교도소 등에서 제대 혹은 출소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 표현들을 보면 학교, 집, 군대, 교도소 등과 뚜렷이 구별되는 사회라는 실체가 존재한다. 그런데 학교, 가족, 집, 군대, 교도소 등도 사회를 구성하는 기관이나 제도의 일부다. 이 기관들도 사회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떠나, 가족을 떠나, 군대를 떠나, 교도소를 떠나 향하는 어떤 곳을 우리는 굳이 ‘사회’라고 지칭한다. 넓은 의미의 사회 속에 좁은 의미의 사회가 있는 셈이다.
--- p.17
사회학에서 연구하는 이런 사회적 힘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개념이 ‘사회구조(social structure)’다. 일상에서 “구조가 단단하다”는 표현을 쉽게 접한다. 이때 구조는 틀을 가진, 뼈대를 가진 무엇을 칭한다. 건물은 대표적인 구조물로서 여러 가지 자재들을 조합해 튼튼하게 지은 결과물이다. 건물에 들어간 사람들은 건물의 출입문, 복도 등에 의해 동선이 유도된다. 따라서 같은 건물 안에서 사람들은 구조가 정한 길을 따라 일정한 경로로만 다니게 된다. 일종의 규칙성이 생기는 것이다.
--- pp.29~30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첫걸음은 거리두기다. 익숙한 일상은 보통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도 익숙해서 당연해 보이는 일도, 명백하게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로 보이는 행동들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보이지 않았던 더 큰 사회적 맥락이 보이게 되고, 개인의 바깥에 있는 거대한 힘이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p.33
사회학은 비교적 젊은 학문이다. 사회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1830년대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으니 그 역사가 200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학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학자는 프랑스의 오귀스트 콩트(Augueste Conte, 1798~1857)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의 사회학자의 영예도 자연스럽게 그의 차지가 되었다.
--- p.37
그런데 만약 자살이 전적으로 개인적 요인에 의한 행동이라면 한 사회의 자살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들쑥날쑥하거나 다른 사회와 비교했을 때 어떤 해는 높고 어떤 해는 낮은 등 자살률에서 일관성을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해 뒤르켐은 1897년에 출간한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이 개인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도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 pp.51~52
베버의 사회학을 ‘이해의 사회학’이라고도 하는데, 이 점에서 그는 앞의 초기 사회학자들과 다른 특징을 보인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적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행위의 외관만을 관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콩트, 마르크스, 뒤르켐 등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찰 가능한 현상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을 연구방법론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러나 베버의 사회학에서는 행위 자체의 관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 행위는 다른 사람과 관련된 ‘주관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동일한 행위인 것처럼 보여도 그 행위의 주관적 의미가 다를 수 있으므로 사회적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위를 행위자의 체험과 관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pp.67~68
결국 우리는 존재한 적이 없는 붕괴되지 않은 가족을 유교적 전통 가족의 형태로 과거에 투사해두고, 그 이미지와 현재의 가족을 비교하며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실재했던 과거의 가족이 현재의 가족에 비해 그리 조화롭지 못했고 구조도 튼튼하지 못했다면, 가족의 붕괴 가설 또는 해체 가설도 성립하기 어렵다. 가족은 붕괴하는 것이 아니고 변동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p.140
영화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 《아내가 결혼했다》를 쓴 소설가 박현욱, 가수 장기하는 모두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학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했다고 겸손하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작품에서는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학적 통찰과 성찰이 엿보인다. 특히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가족사회학의 주요 개념과 이론들을 동원하여 일처다부의 관계를 추구하는 여성 이야기를 재치 있게 풀어낸다. 사회학 공부가 문학 영역에서 독특한 힘을 발휘한 셈이다.
--- 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