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인 화가 최동열은 본래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었다. 집안이 거창하여 미술을 할 엄두를 못 냈다. 이 작가의 할아버지는 박영효와 우정국 사건 3일 천하 후 일본으로 넘어가 한국학교를 세우고 관서대학 법대를 나온 후 한국으로 돌아와 나중에 33인을 변호한 우리나라의 초대 변호사이고, 우리나라 첫 피아니스트였던 할머니는 나도향 씨의 누님이다. 이렇게 거창한 집안 장손인지라 경기중학교에 다니며 정치에 꿈을 두었다. 경기중학교 졸업 후 열다섯 살에 검정고시로 외국어대학에 들어가 베트남 어를 전공하고, 열여섯 살 때 해병대에 자원입대했으며 열일곱 살 때 베트남전쟁에 첩보대로 자원하여 2년 동안 포로 심문 등 첩보 활동을 했다. 덕분에 전쟁의 어두운 뒷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제대 후 전쟁터에서 돌아온 그에게 대학이라는 것이 너무나 황당하게 느껴져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삶에 ‘올인’하겠다는 생각으로 공장에서 일하고, 술집에서 바텐더를 하고, 태권도 사범을 하다가, 로큰롤 클럽에서 기도 일을 하며 마약과 섹스에 빠져 살았다. 정신을 차린 후 시를 쓰다 그림으로 전향했다. 플로리다, 멕시코, 뉴올리언스, 캘리포니아, 뉴욕 등을 돌며 떠돌이 화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고생을 하면 할수록 더 신나는 이상 성격인지라 명랑하게 고생하였다.
미술계에 알려진 후 1987년 서울 전시로 금의환향하였다. 그 시절 유행하던 한(恨)을 찾는다고 아내와 아홉 달 된 딸을 데리고 해남, 진도에서 작업을 하다가 겨울이 되자 설산을 그린다며 청평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가 뉴욕 브루클린 다리 아래 작업실과 워싱턴 주 올림픽 반도를 오가며 작업하였다. 올림픽 반도에서 연어 낚시, 등산, 정원 가꾸기 등 농부 일을 하다가 실크로드 여행 후 티베트, 네팔, 시킴, 라다크를 다니며 티베트 불교 벽화를 공부하였다. 이 책의 저자를 화가로 만든 큰 동력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누군가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면 전쟁터에 가든지, 감옥에 가든지, 아이를 길러보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