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25년. 전남 보성 호음동에 사는 허순은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가 고학으로 대학에 합격한다. 문중은 물론 고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된 그는 부모님의 편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그는 청천벽력과 같은 요구를 부모님께 받는다. 두 집안의 이해관계가 얽힌 정략결혼, 그의 나이 겨우 열여덟일 때의 일이다. 상대 집안은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자 명문가. 원치 않았던 결혼이었고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집안은 서로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앙숙이었고 그 골은 수백 년이 될 만큼 깊었다. 하지만 재물과 벼슬이라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고 공부에 대한 욕심이 컸던 순의 수락으로 결혼은 성사된다. 그의 아내가 된 성요는 부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만큼 귀하게 자란 부잣집의 셋째 딸이다. 용모 또한 수려하고 당시 여자의 신분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높은 학식을 쌓았다. 그녀 역시 어른들의 강요에 의해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남편 ‘순’을 향한 애정은 남달랐다. 딸 민순이도 얻었고 남편의 변호사 시험 합격을 위해 매일 새벽 치성을 드리는 것은 물론 온갖 집안일과 견디기 힘든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도 눈앞에 없는 임을 몇 년씩 그리워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험담을 늘어놓는 시댁 인척들과 날이 갈수록 시집살이를 심하게 부리는 시어머니 밑에서 성요는 지쳐만 간다. 급기야 열사병 때문에 심하게 앓게 되고 이를 알게 된 부모님이 딸을 보러 몰래 찾아오기까지 한다.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었던 친청 부모님은 딸을 사위가 있는 한양으로 보내기 위해 수단을 강구하지만 이 역시 시어머니의 탐욕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그리고 한양에서 시작될 더 큰 시련이 성요를 기다리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