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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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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딩 말고 다행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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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346g | 133*200*18mm
ISBN13 9788954678339
ISBN10 89546783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조금 귀찮은 일이 생겼을 뿐이라고,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별일 아니야. 오해는 늘 일어나는 일에 불과해.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짓을 저지를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았다. 어떤 누명이라도 벗어날 방법은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너무 열심히 자신을 변호하고 싶지도 않았다. 자칫 자기연민이나 자기과시에 빠져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십상일 테니까.
--- p.14 「우산은 하나로 충분해」

나는 오해를 풀려고 자진해서 조그만 사람이 되어 고개를 한껏 깊이 끄덕였다. 내가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해 움츠러들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런 마음은 미안해서가 아니라 너무 무서워서 생겨나는 거였다.
--- p.67 「내가 원했나봅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내가 지금껏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왔던 건 둔감해서였다고 해두자. 하지만 행복과 둔감이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건 안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 어떤 단어라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잘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호영의 답장이 늦는다. 견디다보면 결국 누군가를 닮게 될 뿐이라는 걸 호영은 알까.
--- p.88 「내가 원했나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있어, 입니다. 있어? 라고 물어본 다음 있어, 라고 대답하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엄마에게 묻고 싶은데 엄마가 너무 울어서 못 물어봅니다. 나는 아직 사랑하는 기분이니까요. 잊지 않을 때가 아니니까요. 벌써 기억 아니니까요.
--- p.116 「하고 싶어요」

왜 안 죽였어?
전략촌 밖을 돌아다니는 민간인은 사살해도 무방하다는 지침을 우리는 서로에게 다시 상기시켰다.
한 번쯤 안 죽이고 싶었거든.
키스가 소총을 끌어안고 천진하게 대답했다. 순간 키스를 뺀 나머지 모두는 알 수 없는 시기심이 끓어올랐다.
--- p.129 「키스와 바나나」

그래서 나는, 조금도 떳떳하지 못했다. 어리지도 않은 게 울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이 나니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지를 못했다. 나는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것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자세이다. 그들에게는 소원이랄 게 없다. 얼굴을 높이 쳐들면 나를 내려다보느라 더 깊게 수그린 아버지의 고개가 가장 먼저 보였다.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빳빳이 세운 자세로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 p.179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

우리는 모두 언니의 동생들이었다. 언니가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면 우리가 제일 먼저 마셨으니까. 적어도 우리만은 언니를 언니라고 불렀으니까. 진아를 진아라고 부르지 않았으니까.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삼 인용 소파에 새끼 혼자 남았다. 삼촌은 카운터 안쪽의 둥근 의자에 등을 지고 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가 혼자이도록 자리를 떴다. 진짜 써비스였다.
--- p.222 「언니의 십팔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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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소설에는 선의와 악의, 걱정과 욕심, 관심과 폭력, 불운과 불행이 경계 없이 아슬아슬하게 뒤섞여 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인물의 뒤를 따라가다 끝에 이르면 깔끔한 개념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남는다. 그건 마치 둘은 멀쩡한데 하나는 터져버린 마음 같고, 터져버린 하나가 나머지를 모두 적셔버리는 상태와도 같고, 멀쩡한 둘을 타인에게 주고 터져버린 하나를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사람의 표정과도 비슷하다. 어째서 둘은 멀쩡하고 하나만 터졌나. 터진 것에게도 터지지 않으려고 버틴 시간이 있었을 텐데 어쩌다 그리되었나. (…) 내게 언니의 소설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내 보기엔 모두 다행이야, 친구.’
- 최진영 (소설가)
황현진의 소설을 읽으면 바람 한 점 없는 날 올려다본 하늘에서 구름 한 점이 서서히 이동하는 것을 목격할 때의 심정이 된다. 그가 소설에 그리는 세계와 현실세계는 너무나 다르지만 또한 어딘가 너무 닮아 있어서, 마음이 그의 소설 속으로 이끌리듯 기울어진다. 기압의 차이에 의해 구름이 이동하는 것처럼, 황현진의 소설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전혀 모르기도 했을 ‘그곳’의 압력을 높여 그 이야기들이 ‘이곳’으로 서서히 흘러들도록 한다. 당신은 소리치며 도망칠 수도 있고 조용히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곳에서부터 전해져온 소설들을. 그리하여 그곳과 이곳을.
- 김나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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