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사회가 다양한 점에서 막다른 것은 사실이다. 메이지시대 이래 수없이 반복되어온 자신과잉과 자신상실의 사이클을 넘어, 우리는 지금 너무나도 강한 답답함과 갈 곳 없음을 느끼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책임과 자유경쟁의 시장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슬로건이 소리 높여 외쳐지고 있는 것인데, 실제로 기업이나 학교 현장에서 전후의 집단주의는 속수무책으로 붕괴하고 있다. “당신도 괴롭지만 나도 괴로워, 그러니까 지금은 서로 참자”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선택과 자기책임의 원리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수습할 방법이 없는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분명히 짚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선택과 자기책임의 임계점이다. 대체 어디까지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범위인지-그것을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규정하지 않으면 언젠가 반드시 신뢰 붕괴를 일으킬 것이다. 책임을 질 수 없는 것까지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책임이라는 관념 자체를 신뢰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하는 사회란 자기가 무엇을 결정할 수 없는지를 정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는 사회인 것이다.

사토 도시키 교수의 ?불평등 사회, 일본?은 사회과학 분야 서적으로는 이례적이게도 일본에서 22쇄의 중쇄를 거듭하며 13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다. 그만큼 많은 논란의 대상의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점차 고정화되어온 일본 사회의 계층 간 이동성에 접근했고, 계층의 세대 간 계승성에 관한 인식을 일반에까지 보급시켰다.<br/>저자는 먼저 실적주의와 자유경쟁의 시장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요구를 뒤로하고, 허구로서의 ‘실적’화와 그로 인한 새로운 계급 출현의 메커니즘을 밝힌다. 사회적으로 간과되어온 ‘실적’의 거품이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종사하는 지식 엘리트들의 ‘계층 상속’을 은밀하게, 그러면서 더욱 공고히 다져왔다는 것이다. ‘은밀한 계급화’는 기업을 비롯한 각종 현장을 지탱해오던 신뢰의 상실과 책임감 부재로 이어졌다. 전후 일본은 한때 국민의 70퍼센트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중(中)의 중(中)’으로 인식하는 ‘1억 총중류’의 시대를 누렸으나 이제는 어느덧 세대 간 계층의 고정화, 즉 계급사회로의 퇴행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이제 다시 일본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회 평등의 사회를 모색해야 한다며 계층사회의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고자 한다.<br/>이 책이 출간된 2000년을 전후해 일본에서는 ‘중류의 붕괴’가 회자되고 있었고, 사회적 지위?교육?경제를 중심으로 한 ‘격차사회’ 논쟁이 한창 세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고 있었다. 격차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은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고조?확산되어 2006년에는 ‘격차사회’가 올해의 ‘신조어?유행어 대상’의 상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종래의 ‘1억 총중류’가 붕괴되고 소득?교육?직업 등 각종 분야에서 격차가 벌어지면서 진행된 양극화를 상징하는 단어 ‘격차사회’는 시장원리를 중시하고 규제완화를 추진했던 고이즈미 정권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는 키워드이기도 했다.<br/>그 전해인 2005년 ?의학서원醫學書院?(제2663호, 12월 19일)에서는 ?불평등 사회 일본과 건강한 격차?라는 제목으로 대담의 장이 마련되었다. 이 책의 저자와 당시 막 출간된 ?건강한 격차사회─무엇이 마음과 건강을 좀먹는 것인가?(2005)의 저자 곤도 가쓰노리近藤克則 교수(일본복지대학 사회복지학부)가 대담을 나누었는데, 여기에서 사토 교수는 ‘격차’를 얘기하기 전에 먼저 ‘결과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부터 구별해야 한다면서 5년 전 ?불평등 사회, 일본?에서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br/>“‘결과의 평등/불평등’이란 노력과 능력의 결과로 초래되는 것인데 소득 격차가 그 전형이죠. ‘결과의 불평등’ 그 자체는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노력한 사람은 보상받아야 한다’고 한다면 노력해서 돈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소득 격차가 뭐가 나쁜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의 격차가 타당한가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지만요. 한편 후자인 ‘기회의 불평등’은 예를 들면 제가 ?불평등 사회, 일본?에서 말했던 ‘부모의 직업이 자녀의 진로에 영향을 주는’ 격차입니다. 이는 소위 출발 지점에서부터 나 있는 격차죠. ‘결과의 불평등’과 달리 ‘기회의 불평등’은 본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거기에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습니다. 즉 ‘기회의 불평등’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것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 평등에도 ‘결과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 두 가지가 있으며, ‘기회의 평등’은 우리에게 있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할 대원칙에 해당되는 것입니다.”<br/>그러면서 사토 교수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할 가치인 ‘기회의 평등’ 실현을 위해 지켜져야 할 기본 규칙의 하나로 ?불평등 사회, 일본?에서도 강조한 바 있는 ‘재도전 가능성의 확보’를 꼽았다.<br/>이즈음에서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바로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일본의 ‘격차사회’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양극화사회’다. 이는 IMF 관리 체제 이후 최소한 10여 년 전부터 부쩍, 그러나 이렇다 할 해법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회자되어온 ‘일상어’였던 동시에 수많은 너와 내가 그저 입에 담아왔을 뿐 아니라 두 손 두 발 전신을 담그고 살아왔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세계다. 체감하는 바, 심히 안타깝게도 한국의 ‘양극화 사회’에 대한 ‘의미 있는’ 해법은 여전히 미궁 속인 듯하다.<br/>한국의 ‘양극화’의 문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노동시장에서도 생생히 현재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임시직과 비자발적 파트타임을 합친 ‘비정규직’ 비율이 27.5퍼센트로 2위, ‘단기 근속자 비율’은 37.2퍼센트로 1위라고 하는 OECD 내 한국 노동시장 순위(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09년 자료)와 같은 데이터를 애써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의 ‘양극화’ 역시 우리 사회가 ?불평등 사회, 일본?의 저자가 말하는 건강한 사회의 최대 존중 가치, 이 난해한 ‘기회의 평등’을 너무 오래 모른 척하고 온 탓이 아닐까. 그리고 그 기본 전제라는 ‘재도전 가능성’이 우리 사회에서도 어디에선가 원초적으로 봉쇄되었기 때문은 아닐까.<br/>이에 공감하거나, 특별히 한국이 ‘남부럽지 않은(?)’ 학력사회임을 절감하는 한국의 모든 독자에게 ?불평등 사회, 일본?은 여러 명쾌한 해답과 동시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미션을 제시해줄 것이다.<br/><br/>해외서평 및 관련 기사<br/>세습의원이 속출하고, 실적이 없는 엘리트가 등장하는 배경은……? 이 책에서는 사회조사에 입각한 예리한 분석을 통해 근년 막연히 떠돌기 시작한 ‘노력해도 별 수 없지 않은가’라는 불평등감의 정체를 일본의 ‘계급사회’화로 규명한다. 그것은 왜 발생하고, 어떠한 왜곡을 우리들에게 초래했는가. 일본이 평등한 사회라고 믿는 이들에게도,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br/>_요미우리신문(2000.7.13)<br/><br/>엘리트의 자녀는 명문학교를 경유해 엘리트가 됐기에 다른 세계를 모른다. 자신들이 진로를 선택했다는 자각도 없고 지위가 기득권화한 까닭에 지위에 대한 책임감도 없다고 하는 분석은, 필자도 늘 느껴왔던 점이지만, 무책임한 사회 일본의 구조를 적확하게 지적한 점에 있어 탁월하다. 그러나 무책임한 엘리트와 노력해도 헛수고인 그 밖의 사람들이라는 계층 분화로는 일본의 장래는 어둡다. 그 대책에 대한 제언이 이 책의 후반에 나오는데, 아직 검토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다만 태어나면서부터 핸디캡이 있는 경쟁사회를 가려 덮은 채, 노골적인 시장주의로 극복해내려는 작금의 경향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논의하기 어려운 이 분야에서 감정론이 아닌 지극히 적확한 방법을 사용한 분석이 출현한 것을 축하하고 싶다.<br/>_우에다 노리유키, 요미우리신문(2000.7.30)<br/><br/>지금, 동경대 재학생들 가정의 평균 연수입이 1000만 엔을 넘는다는 것을 아시는가. 맘껏 넉넉하게 교육 기회에 투자할 수 있는 부모를 지닌 자녀가 일류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고수입의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다. 대학에서 일류 기업으로, 일류 기업에서 얻은 수입을 밑천 삼아 자녀를 대학으로……? 라는 식의 사이클을 반복되는 가운데 일본에 ‘대졸 화이트칼라’라는 사회계급이 형성됐음을 상세한 통계적 조사에 근거해 묘출한 것이 이 책이다. (중략)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사토 씨는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더듬는다. 평범한 샐러리맨에 지나지 않았던 아버지가 무엇을 믿고 교육에 투자하여 자신을 대학에 진학시킨 것일까 라면서. (중략) 이 장에 이르기까지의 날카로운 분석과 풍부한 교양으로 뒷받침된 문장과 달리, 독백에 가까운 감성적 심정의 토로에 학생 여러분은 무엇을 느낄 것인가. 꼭 한 번 읽고 들려주기 바란다.<br/>_다카하시 미사노리(시가대학 경제학부 교수)<br/><br/>저자에 의하면, 일본 사회의 시스템은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붕괴되고 말았다고 한다. 일찍이 세계적 관심과 칭송을 한몸에 받았던, ‘넨고우죠레츠(연공서열)’로 대표되는 ‘일본식 경영’은 이제 그 빛을 잃었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상류층은 시장원리와 자유경쟁, 즉 약육강식의 원리가 관철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노력’보다는 ‘실적’을 더 높이 평가하자는 것이다.<br/>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실적주의나 자유경쟁을 주창하는 엘리트층, 바로 그들이야말로 개인의 ‘실적’이 아니라 부모들의 계층 상속에 의해 현재의 지위에 올랐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그는 지금의 일본이 전전보다도 더 계층이 고정화되어 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노력하면 무언가는 되는’ 사회에서 ‘노력해도 별수 없는’, 끝내는 ‘노력할 의욕도 안 생기는’ 사회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br/>더욱 심각한 것은 진정으로 자기가 성취한 성과를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는 참된 의미의 실적주의가 일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상층부의 사람들이 자랑하고 있는 ‘실적’이란 부모의 재산?학력?수입 등에 의해 처음부터 자본 투하를 받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실적주의에는 ‘기회의 평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는데, ‘기회의 평등’이란 묘하게도 ‘나중에야 알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결과가 나온 다음이 아니면 스타트 라인에서부터 ‘기회의 평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러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안한다.<br/>_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 동아일보(2000.8.25)<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