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여전히 투입에 대한 고민은 적고 산출만 증가시키라는 요구가 팽배하다. 그 결과 노동의 질적인 측면이 떨어져 낮은 효율성으로 줄어든 산출을 장시간의 노동으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결국 모든 것이 직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당연시되고 그 속에서 여전히 삶의 여유가 없다. 따라서 투입을 줄이고 산출을 늘리는 것이 노동생산성 향상의 답이며, 이를 위해 우리 사회 내에 쌓인 ‘복잡성’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 p.17
개별적인 전형들의 전체 집합체인 대학 입시 제도는 지나친 복잡성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변모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가속화시키고 입시 학원이라는 불가사리 괴물을 양성하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선발한다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다시 말해, 현행 대학 입시 제도가 추구하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인재 선발이라는 목표는 복잡성 폐해 때문에 이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제도의 타당성마저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 p.19
21세기에도 여전한 우리 사회의 장시간 노동은 기업들이 고객 해결 과제(jobs to be done)를 위한 직무보다 부가적인 일들에 지나치게 중독되어 기업 내에 쌓인 복잡성에 근본 원인이 있다. 즉, 복잡성에 사로잡혀 직무상 불필요한 업무를 처리하는 상황을 당연시한 것이 바로 장시간 노동이다. 복잡성은 늘어난 일 처리와 다양해진 업무들에 스며들어,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에게 불필요한 장시간 노동 강요를 통해 직무착취(job impoverishment)를 하고 기업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과 손해를 발생시킨다. --- p.35
전략의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원인은 지나친 전략 변화, 너무 많고 불명확한 전략(우선순위의 혼선), 복잡한 전략 계획 프로세스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는 우리 기업이나 조직들에서 익히 봐온 것들이다. 현재 많은 기업들에서 연차 전략 수립(계획과 예산)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고 있으며, 심지어 16주(1분기)의 시간을 전략과 관련된 계획을 준비하는 데 사용할 때도 있다. 즉, 1년에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앞으로 해야 할 행동들을 미리 정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데 정작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상황이다. --- p.52
팬택이 법정관리에 도달하게 된 것은 제품이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제품이 팔리지 않은 것은 고객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팬택의 스마트폰 가격이 고객의 기대 가치에 비해 시장에서 과도하게 높았던 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며, 이러한 고가 정책은 제품 개발 시 고객 가치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부족한 데서 비롯됐다. 기술 중심의 벤처 제조 기업으로서 단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룬 과도한 자신감으로 인해 개발자 관점에서만 고객 가치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쌓인 복잡성 때문에 제대로 시장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 결국 팬택의 발목을 잡았다. --- p.84
이익 추구 전략에 복잡성이 쌓이면 기업은 좋은 이익과 나쁜 이익에 대한 고려 없이 무분별하게 이익을 추구하여 결과적으로 나쁜 이익에 중독되고 만다. 왜냐하면 이익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에 따라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는 비용으로 간주하여 취소하거나 뒤로 미루며 무분별한 원가나 비용 절감 정책을 전사적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이익 달성 과정에서 고객 배려는 없어지고 목표 이익만 남아 고객 가치의 훼손이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이로 인해 기업 이익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지만 그것에 취해 더욱더 나쁜 이익에 빠져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 p.96
기업의 기술 전략에 복잡성이 증가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은 먼저 지나치게 많은 연구 인력을 보유하면서 그 인력과 기업의 기술력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다. 또한 개발자들이 고객의 니즈를 넘어서는 지나친 성능의 기술이나 변화하는 고객 니즈와 상관없는 기술 개발에 치중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들이 반복됨에 따라 점차 기업은 기술 중심적 문화로 변화하여 혁신 그 자체만 추구하고, 현재 목표 시장에서의 경쟁력과 수익성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기술만 보유하게 된다. --- p.108
조직 내 복잡성이 증가하면 전략적 우선순위에 의해 자원을 할당하는 게 아니라, 조정과 타협을 통해 조직 전반에 걸쳐 자원을 얇고 넓게 분산시키려는 경향이 팽배해진다. 이것은 복잡성으로 인해 개별 프로젝트 또는 과제 간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 어렵게 된 점도 있고, 개별 프로젝트를 검토하면서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좋은 활동은 모두 추진한다는 식의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 p.166
리더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조직 내외에 충분히 리더십을 제시하고 조직을 이끌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가 보여주는 리더십이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복잡성의 측면에서도 리더는 조직의 내외적인 복잡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명확한 리더십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낡은 리더십으로 스스로가 복잡성이 되어서 조직의 혁신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 쇠락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 p.180
유교적 기업 문화 속에서 하향식(top-down) 경영 방식을 통해 성장한 현대자동차는 시장 내 추격자로서 효율성과 생산성 극대화 전략으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이는 유교적 리더십의 유효성을 어느 정도 증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에어런스는 글로벌 시장의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입장이 바뀐 지금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십이 기존 리더십과 계속 충돌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상명하복의 유교적 문화와 자율 속 혁신을 추구하는 문화 간 충돌이 기업 내 리더십에 의해 조화롭게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불명확한 리더십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 p.182
21세기 기업은 현실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미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동력은 우수한 인적자원들이며, 그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 평생 학습 능력, 지적 호기심과 자발성, 협업 능력, 디지털 역량 등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인재들은 복잡한 입시 제도가 아니라 양질의 대학 교육을 통해서만 배출될 수 있다.
---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