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고통과 좌절된 욕망이라는 ‘화염’에 휩싸여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통제하려 하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짐승을 놓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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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피스트가 회의론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프로타고라스를 통해 소피스트의 철학적 입장이 교육자라는 역할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아테네의 부유층에 고용되어 어떻게 하면 연설을 통해 여론을 흔들 수 있는지, 어떻게 배심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진실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만약 진실이 토론에 방해가 된다 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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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어딜 가든 곤경에 빠질 거라고 확신했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대중적 논쟁이나 권력자의 권위 에 도전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사유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가. 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는 이 또한 타협에 불과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가치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필요한 경우) 그 가치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지 않는다면, 그 가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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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철학자들이 지적해온 것처럼, 도덕을 쾌락의 관점에서 보는 에피쿠로스의 윤리적 쾌락주의는 우정의 가치를 자기중심적인 만족의 차원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관계를 진정한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만약 그가 우정 그 자체에서 가치를 찾는다면, 다시 말해서 우정이 개인적인 기쁨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인정한다면, 그는 쾌락주의라는 철학의 일관성 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한다. 에피쿠로스는 나쁜 친구인가, 아니면 나쁜 철학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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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합리주의자들의 요점은 환생설이나 선천적 천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라이프니츠의 주장처럼 우리의 마음이 태어날 때부터 특정한 근본적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으며, 살면서 겪는 여러 경험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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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동이 상호부조주의Mutualism라고 이름 붙인 이 시스템은 소유권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적재산Personal Property과 사유재산Private Property을 구분하자는 취지였다. 제빵사의 빵과 농부의 들판처럼 시간과 노동력을 투입하여 얻은 재산은 개인이 소유한 인적재산이지만, 자본가가 개발조차 하지 않은 채 소유만 하고 있는 땅은 사유재산이다. 그는 본인 이마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돌아갈 자원을 ‘도둑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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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공부할 것인가, 아니면 곡예사의 길을 걸을 것인가? 지금 만나는 사람 이 최선의 선택일까, 아니면 어딘가에 더 좋은 인연이 있을까? 사르트르는 운명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것을 믿지 말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오직 선택만이 존재한다. 당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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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로서는 특이하게도,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버트런드 러셀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으며, 비트겐슈타인의 비범함과 열정에 매료된 러셀은 철학의 미래가 그에게 달려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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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과학과 달리 유용한 발견을 위한 도구가 아니며, 무엇 하나라도 정확히 증명해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토록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은 피곤해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지만, 적어도 완전히 부정적인 활동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를 통해 (잘만 된다면) 어떤 대상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고……. 잠깐만, 우리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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