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조금이나마 해결책을 찾은 것은 굉장히 힘겨운 시기를 겪은 후였다. ‘좋은 방송’에 대한 판단은 청취자가 하지만, ‘좋은 선택’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할까? 하나하나의 선택과 결정에 미진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쏟아부었던 나의 노력까지 스스로 비난하지는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의 일상이 100퍼센트의 완전무결한 성공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으니까, 매일 수십 개의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나의 일상도 성공과 실패가 적절히 섞여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 p.27, 「참으로 시사 피디스러운 하루」 중에서
방송 아닌 삶에서도 누구나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한 적이 있지 않을 인생은 마치 하루 두 시간의 라디오 방송처럼 한정돼 있고, 이 시간 안에 어떤 것을 담아 인생을 채워 나갈 것인지 선택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선순위의 리스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두가 앞에 두는 것들을 우선 담을 것인지, 다른 이들이 담는 것들은 과감히 배제하고 남과 다른 것들로 인생을 차별화시킬 것인지 고민은 계속된다.
--- p.42, 「오늘의 메뉴」 중에서
한 방송작가의 얘길 들으니, 피디들은 블랭크가 발생하는 꿈을 꾸고, 작가들은 생방송 직전인데 원고가 준비 안 된 꿈을 꾸며, 진행자들은 생방송에 지각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특급 악몽들이다. 이 악몽들의 공통점은 모두 ‘생방송’을 전제로 한 사고란 점이다.
--- p.72, 「인생도 생방송, 라디오도 생방송」 중에서
하지만 우리 인생처럼, 라디오엔 내일이 있다. 생방송을 좀 망친다 한들 어떤가, 오늘 잘못하면 내일 만회할 방송이 있다. 생방송이 마음처럼 잘되지 않은 날은 퇴근길 발걸음이 아주 찝찝하다. ‘그때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왜 그 실수를 막지 못했을까.’ 그럴 때 해결의 주문은 딱 하나다.
“하루만 방송하고 끝낼 건 아니잖아.”
인생도 그렇듯이 말이다.
--- p.76, 「인생도 생방송, 라디오도 생방송」 중에서
제일 웃기는 일은 피디 본인의 결혼식인데, 결혼식 후 이어지는 신혼여행 휴가 때문에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워야 하고 이 기간 동안 미리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느라 결혼식 전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는 강행군을 하기 일쑤다. 보통 신부들은 일생일대의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 틈틈이 피부도 관리도 받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데 제작 피디들을 보면 피부 관리는커녕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 p.110,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힘」 중에서
진행자, 작가, 피디, 라디오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매일매일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의 일 속에 들어가는 일은 힘들지만 그 일상을 함께 견디고 함께 버텨주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듣는 사람들의 일상이 늘 평안하고 큰 이변이 없기를 바라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에 조금의 숨 쉴 틈새를 주고 그 일상을 굳건하게 지켜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라디오를 만드는 사람들의 공통된 꿈일 것이다.
--- p.120~121, 「매일의 의미를 길어올리는 사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