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걱정은 마. 내가 다 준비해놨으니까. 깜짝 놀라게 해줄게. 너도 좋아할 거야.”
나는 중얼대며 불을 껐다. 그리고 아이가 잠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의사가 매번 충고하는데도. --- p.18
아이는 우울해 보였다. 추위 탓에 빨개진 코, 푹 들어간 눈도 그걸 감춰주진 못했다. 우리는 새를 사러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어머니와 아들, 완벽한 행복의 순간.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얼굴이 어두운지 아이에게 묻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 p.26
“다 됐다!”
그 순간, 으제니오가 비명을 질렀다.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 프레디가 축 늘어져버린 것이었다.
“뭘 어떻게 하신 거죠?”
나는 최대한 점잖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수의사에게 물었다. 속으로는 ‘당신, 프레디를 죽였지, 미친놈!’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감히 그럴 생각도 못하고, 땀만 뻘뻘 흘리면서 간이 콩알만 해져 있었다. --- p.94
으제니오는 침대에서 발딱 일어났다. 아이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엉뚱한 소리를 했다.
“엄마, 영국 여왕 이야긴데, 그래도 행복하긴 한가봐. 텔레비전에서 여왕의 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거든. 새들이 굉장히 많더라.”
그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 p.99
사진은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는 거짓말이다. 스탈린적인 발명품이랄까. 사진 속에는 절대로 지겨운 파티들, 냉기가 도는 슈퍼마켓에서의 을씨년스러운 쇼핑, 숨 막히는 식사, 형제자매 간의 다툼, 치유할 수 없는 환멸, 이혼의 징후, 일상의 권태, 비 오는 날 같은 것들은 없다. 우리는 사진을 보며 아쉬워할 가치도 없는 과거를 아쉬워하게 된다. 좋아한 적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는 순간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도 된다. --- p.219
나는 행복을 꿈꾸고 있었다. 홀로 있는 여인, 입술엔 미소를 띠고, 평온하고, 영혼은 하늘처럼 맑고. 그렇다, 난 강하면서도 평온하다. 자유롭다, 자유롭다, 자유롭다. --- p.262
‘주머니에 조약돌을 주워 넣고서’ 이 표현을 누가 썼더라? 모든 게 바보 같은 이야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별한 일은 없다. 정말로 없다. 물이 이토록 잿빛인 적이 없다.
똑같은 잿빛을 그린다는 건 불가능하다.
--- p.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