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교의 우수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기자들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
가장 많은 대답은 놀랍게도 ‘돈을 잘 버는 사람’도 ‘유명한 사람’도 아닌, ‘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였다.
- 박하식, '이젠 세계인으로 키워라'
하버드 대학생들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다만,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위의 말에는 동의한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베껴 쓰기다. 나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사람의 글을 베껴 쓰면 된다. 왕도는 없다. 오늘 당장 소설가 김훈의 책을 모두 사서, 첫 페이지부터 끝 까지 매일 세 쪽씩 베껴 써 보라. 1년 뒤, 당신은 김훈처럼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김훈 같은 소설가가 된다는 보장은 못한다).
피아노를 치든, 그림을 그리든, 영어를 말하든, 잘 하려면 무작정 따라해야 한다. 무엇을 선생의 연주를, 선배의 화법을, 원어민의 말을. 처음에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대로 흉내 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창조는 서투른 모방에서 비롯됐다. 따라하고 흉내 내고 베끼는, 길고 긴 시간 없이는 창조도 없다.
빅뱅의 G드래곤이 지금처럼 노래하고 춤추기 위해서는 6년의 연습기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양현석을 비롯한 자신의 안무 선생들의 춤과 노래를 무조건 따라했다. 몇 해 동안의 단련을 마치고, 그는 노래를 만들고 춤을 구상할 수 있었다.
화가 정보경은 미대에 들어가기 위해 수천 장의 조각상을 베껴 그렸다. 미술가가 되려면 일단 그리스 조각상 아그리파와 줄리앙과 비너스를 그려야 한다. 홍대 앞 미술학원 거리를 지나다 보면, 미대 입시생들이 그린 그림들이 건물 밖에 전시되너스있다. 조각상 소묘는 화가가 되기 위한 기본 습작이다(미대 입시에 이런 소묘가 꼭 필요한지는 둘째 문제다). 자기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선 먼저 선배들의 그림을 죽도록 따라 그려야 한다.
어학은 어떤가 무조건 원어민이 하는 말을 따라 하는 수밖에 없다. 귀가 트이는 데는 똑같은 영화 100번 보기만큼 좋은 게 없다. 아홉 살 꼬마 명제이는 ‘모노노케 히메’를 100번 보더니 어느 날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1년 후 거짓말처럼 모든 대사를 잊어버렸지만). 언어를 배워 입이 터지는 방법 똑 같은 영화를 100번 보고 영화 속 대사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를 제대로 하려면 좋은 글을 베껴 쓰면 된다. 자꾸 베껴 쓰다 보면 선배의 어휘가 내 것이 된다. 선생의 문장이 내 재산이 된다. 선조의 책이 내 자산이 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독자를 위해 만들었다.
1.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
2. 지금보다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은 사람
3. 잘 읽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이 책에서 말하는 글은 소설이나 시가 아니다. 실용문이나 논설문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산문이다. 에세이다. 편지나 일기, 설득하는 글, 연설문, 칼럼, 여행기가 모두 에세이에 속한다.
필자는 국문법 전공자가 아니다. 따라서 문법이나 맞춤법에 대해선 기본적인 언급만 했다. 문법적으로 옳은 글이냐, 틀린 글이냐를 따지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문법 사항에 대해선 훌륭한 책이 많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잘 읽히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통을 위한 글쓰기를 위해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 책의 내용이다.
몇 해 동안 성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수강생들이 써 온 글을 보며 ‘이런 부분만 고치면 좋은 글이 될 텐데...’ ‘이것만 알아도 수월하게 글을 쓸 텐데…’ ‘이것만 염두에 두면 훨씬 글을 잘 쓸 텐데…’ 하는 생각들이 쌓였다.
그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듬어서 원고를 썼다. 나만의 생각이라 공인된 것은 아니다. 오류도 없을 리 없다. 다만, 글쓰기는 ‘내가 가진 지식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글을 통해 전하는 것’이라는 전제하에 썼다. 말이나 몸짓으로 내 의사를 전할 때와는 달리, 글로 나의 무엇인가를 전해주려면 나와 상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써야 한다. 언어 사용을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 그 원칙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원칙은 오직 현장에서 나온 것이다. 그동안 수강생이나 예비 작가들의 원고를 많이 봐왔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10만장에 이른다. 방대한 사례를 분석하고 정밀하게 따져서 ‘단순하고, 쉽고, 소통하는 글=좋은 글’ 이라는 큰 틀을 세웠다. 여기에 세세한 이야기를 더했다.
각 장의 끝에는 훌륭한 작가들의 글을 실어 베껴 쓰기 교본으로 엮었다. 이 책에 나온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좋은 작가의 글을 하루에 한 두 페이지 씩 베껴 써 보라. 1년 쯤 지나면, 쓰기에 부쩍 자신이 생기게 된다. 그때 쓰는 글은, 이전에 썼던 글과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