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호산춘을 빚는 황규욱 씨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호산춘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나는 분청인화문잔에 호산춘을 따르고 싶어졌다. 충동이 일면 되도록 결행하는 을 택하는 게 여행을 업으로 삼으면서 생긴 버릇이다. 갈까? 말까? 고민되는 순간이면 가는 을 택한다. 인생은 나아가는 만큼 사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나는 호산춘 술병 마개를 열고 “술 한 잔 따라 마셔도 될까요?” 말하고서, 이 관장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분청인화문잔에 술을 채웠다. 나는 “이 술잔도 술맛을 보지 못한 지 500년은 되었을 겁니다.”라고 말하고선 냉큼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술맛을 보고 나자 황규욱 씨가 물었다. “술맛이 어떻습니까?” 술을 빚는 이들은 자신의 술맛이 어떤지 늘 궁금해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궁금증이 더 커진다. “500년 된 술잔에 술을 마시니, 500년 된 술을 마신 것 같습니다.”
---p.78 (4. 8진사 8천 석 가문의 술)
“내 술 좀 팔아주이소, 하고 발로 뛰고 사정하고 홍보하고 배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슨 그런 배짱 장사를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럼 나는 내 방식대로 간다 하면 웃고 맙니다. 돈은 안 돼도 속은 편합니다. 남의 자본 끌어들이지 않고 분수를 지켜가면서 적절히 술을 빚는 게 내 방식입니다. 팔기 전에, 내가 마시고 내 이웃이 마시는 술입니다. 한 병 더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맛있는 술을 내기 위해서 술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길이 있다고 다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알고 있으면서도 갈 수 없는 길도 있어야 합니다.” 그의 삶에, 그의 집안에 신념이 있듯이, 그는 술도 신념을 가지고 빚는다. 자존심 센 술, 호산춘. 호산춘이 있어 문경까지도 자존심 센 동네로 보인다.
---p. 91(4. 8진사 8천 석 가문의 술)
와인을 좋아하고 와인 문화를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무주를 여행하라고 권하고 싶다. 와인 사대주의에 흠뻑 취한 이들이 흔히들 “우리 와인 뭐 있어? 마실 만한 게 있어?”라고 말하는데, 조선의 포도주, 머루와인을 맛보고 나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 싶다. ---p.167(8. 한반도 최초의 포도주는?)
“맥주를 마신다. 마시는 방법은 용수(대오리로 짠 체)를 박거나 눌러 짜지 않는다. 대나무통을 항아리 속에 꽂는다. 둘러앉은 손님들이 차례차례 빨아 마신다. 옆에는 물잔을 놓아두었다가 술을 마신 만큼 항아리 속에 물을 붓는다. 술이 바닥나지 않는다면 그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 고려시대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이제현(1286~1367)이 맥주麥酒를 마시면서 쓴 글이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맥주는 보리밥을 지어 누룩과 섞어서 발효시킨 술로 여겨진다. 항아리에 대나무통을 꽂고 여럿이서 술을 빨아 마시다니, 풍경도 낯설다. 마신 술의 분량만큼 술독에 물을 부으니 술맛은 점점 옅어졌을 텐데 시인은 맛이 결코 줄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도 술과 분위기에 취해 술맛이 옅어지는지도 몰랐던가 보다. 대나무는 피리만 한 것을 사용했던 듯한데 위생적이지는 않아 보인다.---p.172(9. 보리술 항아리에 대통 꽂아놓고)
한 시간도 넘게 솥뚜껑도 닫지 않고, 소줏고리도 얹지 않고 전술을 끓이니 부엌 안이 알코올 기운으로 가득 찼다. 부뚜막에 앉아 아짐의 말벗을 하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기체로 퍼진 알코올이 코와 입으로 들어와 현기증을 일으켰던 것이다. (……) 깨진 소줏고리 주둥이에 이어둔 대나무 홈통을 타고 소주가 한두 방울씩 내려왔다. 투명하고 맑은 액체다. 처음 증류하면 알코올 70% 안팎의 술이 나오는데, 아짐의 홍주는 50도 정도로 느껴졌다. 중국 고량주 56도짜리보다는 덜 독했다. 한 시간 반 넘게 알코올을 날려보냈으니, 순도 높은 알코올은 다 증발한 뒤라서 그랬다. 그러니 내가 애가 탈 수밖에. ---p.188~190(9. 보리술 항아리에 대통 꽂아놓고)
어느 회사의 소주를 두고 “그래 이 맛이야, 소주는 이래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상표를 떼고 나서 다른 소주들과 섞어놓으면 그 맛을 가늠해내기가 지극히 어렵다. 소주를 만드는 연구자들조차 그 맛을 구분해내기 어렵다고 하니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서 소주는 95%가 동일하고 5% 정도만 차이가 난다고 소주 제조자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감미료의 차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희석식 소주 맛의 차이는 그 정도밖에 안 된다.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은 개성 있는 맛이 아니라 애향심이나 익숙해진 습관에 따라 술을 선택한다.
---p. 230(11. 물 좋은 마산, 술의 도시 마산)
술병을 보고 취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그런 경험이 있다. 2005 서울국제주류박람회장에서였다. 재미있는 술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잔을 받치는 높은 굽 안에 방울이 들어 있어서, 잔을 흔들면 탈랑탈랑 소리가 났다. 가야 고분에 잠들어 있던 토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방울잔이었다. 얄상하면서도 탄탄한 게, 쥐어보니 방아쇠처럼 손가락 마디에 착 감겼다. 방울잔 옆에는 인상적인 술병도 놓여 있었다. 발 물레의 회전력에 몸을 맡겨, 둥근 테 문양을 낸 반투명 유리병이었다. 디자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술맛도 보기 전에 술잔과 술병에 취하기는 처음이었다. ---p.245(12. 술병과 술의 향연)
우리나라 소주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진로 참이슬은 첫 출시되고 7년 7개월 만에 100억 병을 판매하면서, 5년 연속 세계 증류주 시장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최고 품질의 희석식 소주를 만들어내는, 세계 최강 소주의 나라다. 하지만 증류식 소주 시장은 형편없다. 소비자들은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하고, 증류식 소주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주를 오로지 가게에서는 천 원, 음식점에서는 3천 원 하는 값싼 술로만 안다. 이런 상황이니, 증류식 소주 시장에 뛰어드는 일은 헬멧도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고 급류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이 위험천만한 일이다. ---p.248(12. 술병과 술의 향연)
도수가 높은 41도 화요의 향을 맡아보니, 콧속에 전류가 흐르는 듯 찌릿했다. 아세톤에서 느껴지는 휘발성 알코올 향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소주의 향을 즐긴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낯선 경험이다. 한입에 털어 넣고, 캬아! 삶의 쓴맛이라도 대신 토해내는 양 지르는 탄성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본디 소주란, 오크통에서 무르익은 위스키처럼, 포도주에서 끌어올린 브랜디처럼 향긋한 몸내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런 소주 향과 너무도 무관하게 살아왔다. 41도 화요는 소주 본래의 몸내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술이다. ---p.252(12. 술병과 술의 향연)
똑같은 쌀을 가지고 술을 빚지만 일본의 양조업은 조직화되고 과학화되어 있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면서, 청주를 세계에서 가장 만들기 까다로운 술로 각인시키고, 세계에서 가장 독한 발효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일본 청주는 세계 명주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름도 오사케〔お酒〕로 통한다. 같은 청주淸酒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우리가 청주의 주도권을 빼앗긴 이유는 여기에 있다. ---p.280 (13. 일본 술 축제 행렬 속으로)
술 축제는 술의 이름을 빌린 주당들의 잔치가 아니다. 물론 술의 전시장도 판매장도 아니고, 사람을 많이 모으는 가수들에게 판을 빌려주는 자리도 아니다. 좋은 술을 지키려면 좋은 물이 있어야 하고, 물을 지키려면 땅이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술의 잔치는 물의 잔치이고 땅의 잔치라야 한다. 그리고 술 속에 녹아든, 이 땅의 쌀과 농산물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술 축제가 성대해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p.281 (13. 일본 술 축제 행렬 속으로)
우리의 전통을 팽개쳐두고 남의 것만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지금 법으로 규정해놓은 청주는 일본 청주라고 고쳐 부르면 된다. 그리고 우리 전통주에 청주라는 이름을 되돌려주고, 지금껏 불러온 약주라는 이름도 세분화하면 된다. 독도만 우리 땅이 아니라, 청주도 우리 것이다. 식민지 잔재 청산은 일본 것을 일본 것이라 하고,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하면 이뤄지는 일이다. 그리고 청주를 진정한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청주를 일본 청주보다 발전시키고 과학화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p.299 (14. 일본 청주의 비법을 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