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다느니 주부는 가정을 책임지는 전문 경영자라느니 그런 말을 잘도 해대는데, 정작 주부들이 집 밖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면 전업주부로 일한 시간은 경력으로 안 쳐준다. 그러니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렇게 고귀하고 숭고한 일이면 왜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하자고 말할 때 남편들은 곤란해 할까. 다들 겉으로는 찬양하는 것 같아도 속으로는 이건 아무래도 시답잖은 뒤치다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 예를 들어 매일 다른 요리법으로 미학적으로도 영양학적으로도 완벽한 밥상을 차려낸다고 해서 밥하는 일이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일이 되는 건 아니다.
--- 「주부가 평생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중에서
결혼은 여자의 삶을 뒤흔든다. 출산과 육아, 경력 단절과 재취업 또는 전업주부로 살기… 어떤 형태이든 여성들의 삶은 제각각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예측하기 힘들어 보인다. 나와 주변 여성들을 관찰하면서, 그리고 여성들이 쓴 글 속에서 그 단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전업주부라서, 전업주부가 아니라서, 워킹맘이라서, 워킹맘이 아니라서. 모든 게 죄책감의 재료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디서 무엇이 되건 누군가를 실망시킬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식으로 여성들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죄책감의 소재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전업주부라는 표식 안에 든 이중적이고 혼탁한 의미들을 모두 꺼내 한낮의 적나라한 햇볕 아래에 탈탈 털어 바짝 말리고 싶었다.
--- 「엄마가 내게 애나 키우라고 했다」 중에서
출산 휴가가 있지만 막상 쓰면 고과나 승진에 불리하다고 주장하는 남자들을 안다. 가사와 육아에 신경 쓰는 남자는 남성성이 떨어지는 머저리라고 은근히 비하한다는 마초들의 세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남자가 가사와 육아를 외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여자들이야말로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하다. 결혼과 출산 후 겪을 사회적 불이익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은가. 그리고 전업주부인 나는 내가 온 시간을 할애하는 가사 일을 그가 폭탄 돌리기처럼 여기는 것에 또 한 번 상처를 받는다.
그나저나, 집에만 잘 들어가도 공공연히 가정적인 사람으로 정의되는 세상에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자기상이 높고 자책하는 습관이 적다고 한다. 엄마들은 육체적, 정서적 돌봄으로 하루를 빼곡하게 채워도, 어딘가 하나 구멍이 나면 바로 가슴을 치고 자신을 책망하기 바쁜데,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신이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 「남편은 애인가, 개인가」 중에서
아이를 낳은 후 진짜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소개하고 불리는 건 이미 익숙했다. 아이의 존재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누구 엄마’로 불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제대로 불리는 건 아파서 병원에 갈 때뿐이다. 물론 엄마로서 아이에게 엄마로 불리는 것은 단연코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외부에서 누구 엄마로 불릴 때의 무게?아이의 학교생활, 교우 관계, 인성과 성적을 관리하고 단톡방에서는 때로 아이의 대변인이나 대리인이 되어야 하는?는 아직도 무겁기만 하다.
--- 「누구 엄마 말고 나의 이름은…」 중에서
사회와 관습은 여성이 어떤 교육을 받았건 어떤 일을 하건 결혼하고 애를 낳았으면 서둘러 집에 돌아가서 주어진 돌봄의 의무를 하라고 등 떠민다. 하지만 일단 집으로 들어가면 그 뒤는 여성 개인의 선택 문제로 떠넘긴다. 백번 양보하여 내가 당시에 경제적으로 열등한 존재로서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다시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높일 기회조차 박탈당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한 번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잠재력과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로 추락하고 집 외에 갈 곳 없어진다면, 그러한 사회구조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 「오늘, 전업주부를 졸업합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