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에 현혹되는 무능한 군주

어느 날, 제나라의 환공이 술에 취해 관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너무나 창피했던 환공은 사흘이나 조정에 나가지 않았는데, 그때 재상 관중이 말했다. "그만한 일은 군주된 자의 수치가 아닙니다. 선정으로 보충하시면 될 것입니다." "과연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환공은 쌀 곳간을 열어 가난한 사람에게 그것을 베풀고 죄수를 조사하여 죄가 가벼운 사람은 풀어주었다. 그러자 사흘 뒤에 백성들이 환공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임금님, 다시 한 번 관을 잃어 주십시오." 어떤 사람(한비 자신)이 말했다. "관중은 소인에 대해서는 치욕을 씻도록 했지만 군주에 대해서는 창피를 주었다. 환공이 쌀 곳간을 열어 가난한 자에게 베풀어주고 죄수를 조사하여 죄가 가벼운 자는 풀어준 일이 정당하지 않다면 그것은 치욕을 씻는 일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정당하다면 환공은 그 정당한 일을 하지 않고 관 잃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 된다. 다시 말해 관중은 소인에 대해서 관을 잃어버렸다는 치욕을 씻었지만 군주에 대해서는 정당한 일을 등한시했다는 창피를 주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쌀 곳간을 열어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것은 공적이 없는 자에게 상을 주는 일이다. 공적이 없는 자에게 상을 주면 백성은 우쭐해서 커다란 희망을 갖는다. 잘못을 저지를 자를 벌하지 않으면 백성은 뉘우치지 않고 나쁜 짓을 하기 쉽다. 이것은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원인이며 치욕을 씻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