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용묵> 소설가, 시인, 수필가, 언론 기자, 작가, 기업가이다. 정치나 이념을 자제하고 또한 계몽적이지 않은 순수 문학을 지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교적 작품을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묘사가 정교하여 단편 소설에서는 압축된 정교미를 잘 보여주었다.
<김동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시인, 언론인이다. 호는 금동(琴童), 금동인(琴童仁), 춘사(春士), 만덕(萬德), 평론과 풍자에 능하였으며, 한때 문인
은 글만 써야된다는 신념을 갖기도 하였다. 1919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주요한을 발행인으로 한국최초의 순문예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단편소설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같은 해 창간된 순문학과 예술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이광수의 계몽주의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고 한국어에
서 본래 발달하지 않았던 3인칭 대명사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김유정> 강원도 춘천군 신남면 증리에서 출생, 고향에서 1930년부터 1932년까지, 1년 7개월을 머무르면서 김유정은 마을 청년들을 모아 농우
회와 부인회 등을 조직하고, 고향집 언덕받이에 움막을 짓고 『동아일보』의 농촌계몽운동 교육교재로 야학을 여는 등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을 벌였
다. 1932년 6월 15일에 김유정은 자신의 첫 작품인 「심청」을 탈고하였다(이 작품은 4년 뒤인 1936년 조선중앙일보사 발간 『중앙』지에 발표되었다).
등단한 해에 김유정은 자신의 생에 대표작이라 불릴 작품 대부분을 발표하였다. 「금 따는 콩밭」 · 「금」 · 「떡」 · 「만무방」 · 「산골」 · 「솟」 · 「봄봄」 · 「안해」 등의 단편 10편과 수필 3편이 그가 등단한 바로 그 해에 쏟아져 나왔는데, 춘천에서 보고 느꼈던 고향의 정취와 농민들의 곤궁한 생활, 그 자신의 개인적인 불행에서 체험한 감상 등이 그의 소설의 주요 모티프였다.
<나도향> (1902년 3월 30일 ~ 1926년 8월 26일) 본명은 나경손(羅慶孫)이며 필명은 나빈(羅彬)이다. 호는 도향(稻香)이다. 습작기의 서툰 창작 형태를 벗어나 이후의 작품은 빈곤, 사회적 계급 관계 등 현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낭만주의적인 감상성, 미학주의와 현실 비판의 냉정한 관찰력이 결합된다. 그의 소설은 인간의 욕망, 토속성과 원시적 건강성,생명력등이 내면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적인과 또 다르게 암시하는 욕망의 실패와 좌절은 사회적 관계의 부조리가 원인이 된 것, 즉 낭만적 이상이 지닌 건강성은 현실의 타락한 관계, 환경에 의해서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안국선> (1878년 12월 5일 ~ 1926년 7월 8일) 구한말의 작가이자 일제 강점기 초기 시대 관료이다.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돼 일본에서 졸업했다. 1899년 박영효와 관련된 역모 사건으로 미결수로 구금되었다가 종신 유형을 언도받았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대한 학회 등 여러 사회단체에 참여했다. 1908년 탁지부 서기관으로 임명되었고 '금수회의록'을 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