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는 소설 속의 돈 키호테처럼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서, 군인이 되어 1571년에 있었던 레판토 해전에 참가하여 터키 군과 싸웠으나 심한 부상을 입고 감옥에 갇혔고 노예의 신세로 전락하기까지 했다. 세르반테스 자신도 그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고 용맹성의 이상에 흠뻑 젖어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교양과 학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문학을 사랑하고 이따금 현실보다도 문학 속에 더 빠져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인간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 명작 속 인물과 쌍둥이 형제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 <돈 키호테> 중에서
『걸리버 여행기』를 집필하던 시기에 스위프트의 명서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나라 안 어디서든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종이 울렸으며, 사람들은 수를 놓거나 메달에 새기거나 손수건에 그려서 그의 초상화를 갖고 다녔다. 물론 스위프트의 정적들은 겉으로 알려지지 않은 그 소설의 작가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면서 무신론자이자 여왕 폐하를 모독하는 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걸리버 여행기』는 당시 영국이 처해 있던 상황에 대한 대단한 풍자 작품 이상의 것이었다. 일상의 정치를 넘어서서 스위프트는 권력에 대한 탐욕과 아둔함, 광신주의, 파렴치함 등을 비판한 것이다.
― <걸리버 여행기> 중에서
볼테르는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의 가톨릭 교회가 고수하던 교리주의와 절대 군주들의 압력, 유럽 국가들의 호전성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했기 때문에 추방당하고 망명하고 도주해야 했으며 비방과 감옥 생활, 검열에 시달렸다. 볼테르의 생애와 그의 소설의 주인공 캉디드의 삶은 흡사한 점이 아주 많다.
― <캉디드> 중에서
장 파울은 언제나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후는 물론 작업을 하는 도중에도 술을 마셨다. 그의 초상화를 보면 장 파울은 술을 즐기는 사람답게 아주 뚱뚱하다. 둥그런 얼굴, 살찐 몸, 몇 겹으로 겹쳐진 두툼한 턱. 한때 멀리서 그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여성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어쨌든 술에 취해 쓴 것이 분명한 그의 작품들은 매우 탁월했다. 당시에 인정받고 있던 대문학가들인 크리스토프 마르틴 비일란트와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는 장 파울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라면 만사를 제쳐둘 정도였다. 장 파울을 처음 발견해 낸 작가 카를 필립 모리츠는 그가 쓴 최초의 원고를 보고 이렇게 감탄하였다.
“괴테를 능가하는 작품이다. 뭔가 전혀 새로운 것이다.”
― <헤스페루스> 중에서
제인 오스틴이 이 책에서 펼쳐나가는 것은 두 사람의 마음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특히 매력적인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심정 변화를 묘사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또다른 등장 인물들, 즉 어머니와 아버지인 베네트 부부, 자매들, 삼촌, 이모, 사촌 그리고 빙글리 씨 집안 사람들, 그들도 모두 흥미진진한 인물들로서 섬세한 그녀의 필체로 묘사되고 있다. 그 필체는 가차없고 폭로적이지만 전적으로 유쾌하다. 왜냐하면 예리한 눈을 지닌 분석가인 작가 제인 오스틴은 가정의 즐거움을 스케치할 때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온갖 실수와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늘 희극적이라는 것이다.
― <오만과 편견> 중에서
어떤 작가도 월터 스콧만큼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였다. 이 스코틀랜드 사람은 명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가 쓴 책들이 더 높은 매상을 올려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말년에 그의 생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사건이 일어났다. 그의 책들을 출간하던 출판사가 도산하고 만 것이었다. 월터 스콧은 의미 있게 나서서 11만 7천 파운드나 되는 막대한 부채를 모두 떠안았다.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서 글을 썼다. 1832년, 월터 스콧은 글쓰기에 매달리느라 지나치게 몸을 혹사한 끝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채권자들은 그에게 특혜를 줘 부채를 탕감해 주겠다고 했다. 부채는 3분의 2도 갚지 못한 상태였다.
― <아이반호> 중에서
월터 스콧의 역사 소설에 자극을 받은 빅토르 위고는 과거의 거울에 현대를 비춰 보이고 싶어했다. 1830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토대로 빅토르 위고가 형상화하고 있는 민중 폭동은 그 시대의 무력적인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노트르 담의 꼽추』는 발표되자마자 순식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빅토르 위고가 사회 문제와 정치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후 수십 년 동안 위고는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군림했다. 한때 군주제를 옹호했던 위고는 이 소설을 발표한 이후에 급진적인 민주주의자로 변신했다. 사람들은 그를 ‘민중의 목소리’라고 부르며 숭배했고 그가 쓴 책들을 열렬하게 삼키듯 읽어나갔다.
― <노트르 담의 꼽추> 중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1852년에 출판되었을 때 미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뜨렸다. 스릴이 넘치는 노예 추적 이야기와 정치적인 선동 그리고 도덕적인 호소가 뒤섞인 이 이야기는 나라 전체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 책을 열광적으로 호응하면서 읽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분노와 가슴 죄는 듯한 불안을 안고 정신없이 탐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톰과 일라이저, 톱시 그리고 다른 흑인 주인공들과 여주인공들에 대해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 작가가 노예 시장들과 목화 농장들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서술해 나갔다는 점 때문에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다.
―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중에서
완전히 폐인이 되다시피 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느 양심 없는 출판업자가 내민 불리한 계약서에 서명을 하였다. 그 계약에 따르면 그는 짧은 시간 안에 소설을 한 편 써내야 했다. 만약 계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앞서 쓴 작품들은 물론 앞으로 쓰는 작품들 모두 한 푼의 원고료도 받지 못한 채 그 출판사로 넘어간다는 조건이었다. 돈 걱정과 촉박한 시간 때문에 마음은 바짝바짝 타들어오고 발작 때문에 육신이 뒤흔들리는 데다가 사랑에 대한 고통, 도박벽까지 겹쳐 스스로를 혐오하는 가운데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의 집필에 착수하였다. 『죄와 벌』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성을 확고하게 해주었으며 그에게 행운도 가져다주었다.
― <죄와 벌> 중에서
『보물섬』은 처음에는 청소년 잡지에 연재되다 1883년에 단행본으로 출판됐는데, 나오자마자 작가가 어리둥절해 할 정도로 커다란 명성을 안겨주었다. 역설적이게도 전적으로 청소년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이 책은 어른들이 즐겨 읽는 고전이 되었다. 그 이유는 어린아이 한 명과 어린아이 같은 수준의 머리를 지닌 두 사람이 『보물섬』의 주요 인물이기 때문인데, 후에 스티븐슨은 인생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조차 작은 해적 이야기에 열광했다고 회상했다.
― <보물섬> 중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