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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1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402g | 138*214*20mm
ISBN13 9788955618044
ISBN10 8955618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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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줄의 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굵은 실처럼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다시 나무 기둥들 사이로 모습을 감춰 버린 것이다. 밧줄은 시간이 갈수록 농부들한테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마을 역사상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중요하고 불가사의한 일을 경험하고 있다는 강렬한 자부심을 느꼈다. --- p.54

“우린 이미 충분히 멀리 왔네.” 베른하르트가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자네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제 마을로 돌아가야 할 때야. 안 그러면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어.”
남자들은 서로 은밀하게 불쾌하다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누군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투덜거렸다. 욕설 같았다. 몇 사람은 일부러 더 티를 내며 먹는 데 집중했다. 눈치를 보아 하니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했다. 모두 아직까지는 힘이 넘쳤다. 모험심 때문이었다. 그들을 이곳까지 이끌어 온 욕망, 즉 완전히 다른 존재의 정체를 밝히고자 하는 욕망이 아직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다. --- p.55

그들은 숲속으로 자신들을 끌어들인 수수께끼의 흔적을 따라 계속 행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오히려 수수께끼의 해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빨리 흘러갔지만 아무도 그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 --- p.58

밧줄은 농부들의 영혼 미지의 영역에 숨겨져 있어 본인들조차 있는 줄도 몰랐던 동경을 일깨웠다. 이게 전부라고 믿고 살았던 작은 세상에서 한 번 벗어나고 싶은 욕망, 그들을 집과 마을에 꽁꽁 묶어 두고 있는 천 가지 끈을 신나고 화끈하게 끊어 버리고 싶은 욕망 말이다. --- p.81

하지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집념이 다른 잡념들을 전부 옆으로 밀어냈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강렬한 지식욕을 느꼈다. 밧줄의 엄청난 수수께끼를 꼭 풀고야 말겠다는 욕망이었다. 그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끝장을 보고 싶었다. 그러니 밧줄의 끝을 발견할 때까지 원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밧줄의 비밀을 풀지 못한 채 마을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무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바보 멍텅구리처럼 보이겠는가! 원대한 뜻을 품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원정을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유로 이렇게 금세 포기한다는 것은 허풍선이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이 아닌가……. --- p.119

며칠 전부터 그들은 이번 원정이 몹시 주제넘은 짓이었다고 느꼈다. 불확실한 것에 운명을 걸고 길을 떠난 것은 철없는 짓이었다. 멍청하고 위험한 게임에 목숨을 건 셈이었다. 타당한 근거도 없이 결과가 좋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서 규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게임에 뛰어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이 게임에서 자신들이 졌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오만함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 책임은 오롯이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은 그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했다. --- p.147쪽

그런데도 그들은 마을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런 일까지 겪은 마당에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끝까지 가 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밧줄은 그들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그들을 사로잡았고, 그들은 끈적거리는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밧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거미줄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내일 새벽별이 지면 그들은 담요를 걷고 다시 숲을 관통하는 행군을 계속할 것이다. 만약 지금이 원정 초기였다면 더 나은 통찰의 목소리를 따라 귀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정 초기에는 모든 결정을 그들 스스로 내릴 수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에 그냥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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