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나는 몇 번 더 살인을 저질렀다. 지금쯤 여러분 가운데 약삭빠른 분들은 뼛속까지 사악한 악녀가 어째서 펜을 들고 대판 양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나는 『제인 에어』라는 제목이 붙은 대단히 매혹적인 소설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그 소설을 읽다 보니 모방을 하고 싶어졌다. 내 책에는 『제인 에어』 초판을 비판한 작자들을 욕하는 대담한 도입부가 실려 있다. 나는 친구나 연인에게 속 얘기를 털어놓듯 이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 pp.11~12
나는 숲에서 지켜보는 시선을 계속해서 느꼈다. 동그란 눈이 포식자처럼 굶주린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먹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내 운명이 결정 나 있었다.
--- p.39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던 그는 헐겁게 괴어 있던 돌덩이에 발을 올렸다. 그 돌덩이가 골짜기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화강암과 죽은 고사리가 함께 떠밀려 내려갔다. 사고라는 것은 어디서든 일어난다. 이 원칙은 우리의 일상을 어마어마하게 지배하므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유일하면서 보편적인 원칙일 것이다.
--- pp.51~52
“거의 사망한 상태였다고?”
나는 몸서리를 치며 숨을 내쉬었다.
“눈이 그래 보였어요. 그의 눈이 어땠는지 도저히 떠올리질 못하겠어요. 제발 묻지 말아주세요!”
이 말은 사실이었다. 에드윈의 눈은 게슴츠레해지다가 웅덩이 표면을 뒤덮은 얼음처럼 부옇게 흐려지며 희미한 빛을 냈었다.
“그때 스틸 양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없었어요.”
“에드윈을 본 사람도?”
“제가 알기론 없었어요.”
--- p.60
베살리우스 먼트가 내 비밀을 알 리 없는데도 나는 무릎이 와들와들 떨렸다. 그는 내 안에서 무언가를 본 것이다. 나는 영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영혼 대신 불꽃 튀는 부싯돌이 있는 존재였다. 듣기로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자는 침대에 묶인 채 본인 똥을 짓뭉개며 살아야 된다고 했다. 얼음 목욕을 하고, 수은을 처방받고, 바싹 깎은 머리에 거머리를 붙이는 치료를 받으면서, 로완 브리지 학교에서보다 더 적은 음식으로 연명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빌었다.
“저를 퇴학시키지 말아주세요. 저는 미치지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앞으로 예의 바르게 행동할게요. 클라크에게 음식만 주세요. 그럼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 p.135
여러분, 비밀은 조수처럼 밀려왔다가 쓸려가는 법이다. 나는 내가 저지른 거대한 악행과 관련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정보만을 내놓았다. 그 비밀은 가장자리로 살짝 넘치는 강물과도 같았다. 신문 기사에서 샘 퀼페더라는 뜻밖의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예전에 에드윈의 죽음에 대해 캐기 위해 내게 온갖 질문을 던진 바로 그 경찰임을 알았다. 퀼페더는 어느새 순경에서 경위로 진급한 모양이었다. 그는 내게 물음표의 화신 같은 존재라,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척추에 힘이 쭉 빠졌다.
--- p.161
여러분, 거짓말이라는 것은 유기적이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있는 대상에 따라 완전한 거짓일 수도, 반쯤은 사실일 수도, 완전한 사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애벌레가 갑작스러운 자극을 받아 나비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처럼. 그날 저녁에 나는 칼과 세밀화, 사자라와 손필드, 싱이 서로에게 보내는 다정한 눈빛에 취했다.
---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