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는 후대 사람들에게 사치스럽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는 부당한 오명이 씌워졌지만 실제 그녀의 삶은 그렇지 않았다. 비엔나에 있는 합스부르크 가의 궁정에서 보낸 소녀 시절에 그녀는 어쩌다 한 번씩 초콜릿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섯 살인 그녀가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아침식사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하나 있다. 그런데 식탁 위에 있는 초콜릿 주전자 옆에는 컵이 단지 두 개만 놓여 있다.
초콜릿은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강한 음료였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는 마시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앙투와네트 왕비의 사생활을 기록한 캉팡 부인(그녀는 왕비를 모시는 시녀들 가운데 우두머리였다)의 회고록을 보면 프랑스의 왕비로서 그녀의 생활은 아주 검소했다. '왕비의 검소한 생활은 놀라운 정도다. 아침식사로 그녀는 커피 또는 초콜릿을 마시고, 정찬 때에도 그저 흰 살코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녀가 마시는 음료수는 고작 물이었다. 저녁식사 때는 부용(쇠고기나 닭고기로 만든 수프), 닭날개 요리, 그리고 한 컵의 물에 비스킷 몇 개를 적셔 먹는 정도였다.' 그녀가 굶주린 민중들에게 먹으라고 권고한 케이크 이야기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이다!
---pp.269-270
초콜릿은 적어도 2천 8백년 동안 특권층이나 아주 부유한 계층이 즐겨 찾던 '음료'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비트 세대의 대표자였던 케루악이 캘리포니아의 한 산을 올라갔던 그 시기, 초콜릿은 누구라도 손에 넣을 수 있고 대중들이 아주 좋아하는 '고체'상태의 음식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유럽의 여러 카톨릭 국가들에서 교회나 귀족들이 누리던 특권은 종말을 고했고, 초콜릿은 산업혁명을 통해 비싼 음료에서 싼 음식물로 바뀌었다. 이 두 혁명은 초콜릿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최대의 사건들이었다.
--- p.286
'여기에는 기존의 초콜릿 세계의 역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존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담겨있다. 영국이나 유럽대륙, 그리고 미국의 초콜릿 제조업자들은 자사의 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에 대해서는 많은 혜택을 베풀지만 카카오 산지인 열대 나라에서 카카오재배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그와같은 나라들의 농장에서는 건강에 좋든 말든 아랑곳않고 늘 그렇듯이 화학물질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있다.그린 앤 블랙사는 이런 사태에 직면하여 초콜릿을 좋아하는 대중들이 다소 비싸더라도 보다 윤리적으로 올바른 제품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데 도박을 걸었다.' 농약을 쓰지않고 재배한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마야골드'에 대한 설명이다.마야에서 시작되어 마야로 다시 돌아온 초콜릿과 올바른 기업정신이 느껴진다.
--- p. 321
스페인 사람들은 유럽인들 가운데서 완벽한 초콜릿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그들에게 그 방법을 배웠다. 먼저 카카오 원두 약 9킬로그램을 4개 또는 5개 묶음으로 나눈 다음 표면에 구멍이 송송 난 철판 위에 각각 따로 떼어 놓고 아주 약한 불에서 계속해서 저으면서 그것들을 건조시킨다. 껍질이 떨어지면 충분히 건조되었다는 표시다. 낱알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질 정도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건조시켜야 한다. 충분히 마른 원두는 누르면 부스러지는데 이 때 재가 될 정도가 되면 안 된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준비된 카카오를 통이나 그릇에 넣고 뚜껑을 덮지 않고 가열하면서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밤에도 두 번 또는 세 번 정도 저어 준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타 버리게 된다. 다음 날 맷돌 위에 놓고 롤러로 밀면 껍질이 벗겨지는데, 키질을 하여 제거한다. 그래도 남은 것은 주의 깊게 손으로 골라낸다. 그리고 재는 체로 걸러낸다. 재도 껍질도 없이 깨끗해지면 맷돌로 갈아 풍로가 달린 냄비 속에 넣어 덩어리가 될 때까지 가열하며 기다린다. 전체의 무게르 재서 약 11.5킬로그램이 될 때까지 설탕을 넣고 계피 124그램을 넣은 다음 재료들이 잘 혼합될 때까지 손으로 섞는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빻아 전체가 다 카카오처럼 보일 때까지 힘껏 오래 섞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25개의 바닐라 깍지를 분말로 만들어 넣고 설탕을 넣을 때와 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렇게 한 다음 그 절반을 사향가루 1그램과 마른 설탕 약간과 함께 절구에 넣고 다시 찧고, 나머지에 소량의 아치오테를 첨가하여 색을 낸다. 하지만 이 뒤에 첨가하는 두 가지 물질은 꼭 넣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그것을 케이크나 벽돌, 롤 모양 따위로 만든다. 롤 모양은 포장지 한 장을 4부분으로 나누고 충분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덩어리를 올린 뒤 모양이 나올 때까지 흔들고 굴리면 된다. 똑같은 종이 위에 대략 10개 내지 12개의 덩어리를 올려서 손바닥으로 치대면 케이크 모양이 된다. 벽돌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이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속에 초콜릿을 넣고 마르기를 기다리면 된다.
--- p.158
그녀가 세운 그린 앤 블랙 사는 이미 농약을 쓰지 않은 아프리카산 카카오로 판초콜릿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녀는 화학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면 1파운드당 48펜스를 지불하겠다는 조건으로 마야족 재배자 협동조합과 카카오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해서 마야족은 다시 약 1만2천 제곱킬로미터의 밭을 경작하게 되었고 자식들을 중등학교에 보내고 환자들을 멀리 떨어진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린 앤 블랙 사의 팜플릿에는 푸스티노 페크(마야족 카카오 재배가 협회장)의 말이 실려있다. '우리들은 선조들이 수천년 동안 애써 가꾸어 온 땅에서 계속 살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야 골드는 당신들의 도움에 힘입어 우리들이 우리들의 환경을 보호하고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해주였습니다'
--- p.3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