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도 가부키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나도 그것을 사용하며 살아온 것으로, 특별히 자랑할 만한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애착만의 이유로 자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흔히 있는 고향자랑, 가족자랑과 같은 수준의 그저 주관적인 생각이고, 좀더 객관적으로 일본어를 대한다고 해 본들 그것이 과연 언어로써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가, 논리적으로 확고한 것인가, 아니면 사고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등등의 판단은 내리기 어렵습니다. 판단할 만한 입장도 되지 않습니다. "말하고 싶으면 하시고, 듣고, 쓰고 싶으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라는 정도일 뿐, "상당히 어려우니까 그만 두시는 것이 현명하다."등의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본어의 의태어'라는 것만은 외국인에게 마음 속 깊이 권유합니다.
'스키야키'도 '덴뿌라'도 굳이 권하지 않는 내가 "의태어를 한번 시험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라는 심정으로 권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이 '일본어의 의태어'라는 존재가 일본어 속의 하나의 요소, 하나의 품사라는 식의, 예컨대 수많은 요리 중 하나인 덴뿌라, 여러 연극 중 하나의 형식, 혹은 형태로서의 가부키와 같은 존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수준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것이 정말 언어라 할 수 있는 것인가'하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인으로 품사를 결절할 수 없다, 문법상, 문장법상의 확고한 품사로서 이 의태어를 자리매김할 수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무책임한 언어학자는 그저 '일본에는 많은 의태어가 있다'라고 끝을 내고 조금 현명한 학자는 이러한 언어군이 표면적으로 갖는 유치성, 비논리성 등을 이유로 그다지 깊이 있게 언급하지 않습니다.
---저자서문 중에서
누군가 내게 의성,의태어를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마술과도 같은 언어'라고 얘기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표현한다면 독자 여러분들은 아마도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다. 마술? 어째서?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시라. 독자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대화나 또는 문장에서 의성,의태어를 빼고 나면 과연? 그러한 대화나 문장이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논리는 사실 억지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적어도 일본어 교육에 있어서의 의성,의태어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의성,의태어야말로 생생히 살아 있는 언어로서 문장의 의미를 여과 없이 바로바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일본어 교육에 있어서 의성,의태어의 중요성을 약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일본어 문장에 있어서의 의태어는 매우 빈도 있게 등장한다).
--- 역자 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