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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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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고수리 | 첫눈 | 2016년 03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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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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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6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16g | 140*195*20mm
ISBN13 9791195538225
ISBN10 1195538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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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지로 향하던 비행기가 한쪽 날개로 날아서 러시아 우랄산맥에 불시착하다니. 재난 소설 첫 페이지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우리 부부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름한 호텔 식당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우리는 커피 잔을 짠 부딪치고, 한 모금 삼켰다.
“진짜 맛없어!”
“최악이야!”
우리는 마주 보고 와하하 웃었다. 이상했다. 우리는 반쯤 불행했지만 배로 행복했다. 스파시바(спаси?бо), 러시아! 유쾌한 첫날밤이었다.
---「결혼은 예고 없는 불시착 같은 것」중에서

정성, 행복, 희망과 같은 삶의 소중한 가치들. 내게 그것들을 가르쳐준 사람들은 훌륭한 학자도 특별한 유명인도 아니었다. 어디선가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 보통사람들이었다. 삶이라는 드라마를 살아가는 가장 평범한 주인공들. 그분들을 제일 먼저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내 일에 감사했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데 어떻게 방송에 나가냐는 출연자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딱 20일만 일상을 지켜보세요. 우리가 주인공이고, 우리 삶이 다 드라마예요 .”
---「고작가의 날들」중에서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밤이면, 우리는 떠날 준비를 했다. 엄마는 간식과 두꺼운 옷가지를 챙겼고, 우리 남매는 교복을 입고 가방을 둘러멨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깜깜한 밤, 우리는 15층에서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아파트 외벽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왔다. 그리곤 주차장 구석에 서 있는 빨간색 티코를 탔다. 엄마와 동생은 앞자리에, 나는 뒷자리에 앉았다. 귀여운 무당벌레 같은 빨간 티코는 조용하고도 날쌘 동작으로 아파트 단지를 떠났다. 밤의 피크닉. 나는 우리의 짧은 여행을 밤의 피크닉이라고 불렀다.
---「밤의 피크닉」중에서

“세상 풍파도 이 조그만 방에서 버텼지.”
허허.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마도 지금은 잠시 풍파를 견디는 시간. 어서 백리향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내려 앉는 거리에 아저씨의 요새가 가로등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꽃으로 둘러싸인 요새」중에서

산타클로스는 있다. 살다보면 지켜주고 싶은 거짓말 하나쯤은 있다. 어떻게든 지켜주고 싶은 착한 거짓말.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간절히 지켜주고 싶은 그 마음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사랑받는 아이였다. 우리를 사랑한 누군가가 온힘을 다해 우리를 지켜주었고, 우리는 더럽고 무섭고 힘들고 슬픈 것들을 모르고 자랐다. 온힘을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산타클로스가 된다.
산타클로스는 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산타클로스는 있다.
---「산타클로스는 있다」중에서

쉰 한 살의 어른이 내 앞에서 아이처럼 우는 모습은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애처롭고 짠하고 예뻤다. 달래 주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속내를 꽁꽁 싸매다가 결국 터져버린 어른의 울음에는 표현 못할 수많은 감정이 서려 있었다.
---「쉰 한 살, 어른의 눈물」중에서

지하철 역사 안을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서성이는 사람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무언가를 파는 사람들, 멍하게 서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을 바라보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도 저마다의 사연과 삶이 있겠지. 모두가 착하지 않아도, 모두가 친절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꼭 보이는 얼굴이 전부는 아니니까. 무표정으로 종종걸음을 걸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 스쳐 가는 타인들에게 나는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경이로움도 함께.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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