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서울이 고향인 사람은 고향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내게는 서울처럼 다정하고 좋은 곳이 없다. 촬영여행을 갔다가도 멀리 한강의 냄새가 풍겨 오면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싶어 마음이 놓이고 긴장이 풀림을 느낀다. 인왕산과 북악산 근처를 지날 때면 공연히 기분이 좋다. 필운동, 사직동, 체부동, 누상동, 누하동, 도렴동, 통의동, 내자동, 내수동... 서울 토박이가 아니고서는 귀에 선, 이 동네 이름만 들려도 입가에 미소가 돈다.
또,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되지 못한다고들 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시골로는 내러가지 않는 이상한 사람들, 살 만한 곳 다 놓아두고, 무엇 때문에 사람 살 곳이 되지 못하는 서울에서만 복작이며 사는지. 그런 사람들만 떠나 주어도 서울은 한결 조용하련만.
육이오 전만 해도 서울이 이런 북새통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라서, 그 젊음 다 보내고 이제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 이제 죽어 화장하고 나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서울 하늘 이곳저곳을 날아다닐 생각이다. 바쁘단 핑계로 가 보지 못했던 곳들을 날아다니며 노닐 생각이다.
시대에 쫓기고 세월에 밀려 소리없이 스러져 가는 나의 서울.
카메라는 누구의 것이든 하나같이 제 안의 그리움으로 그 렌즈를 향하거니와, 빌딩 숲 사이사이에 용하게 숨어 있는 어제를 찾아 오늘 나는 골목을 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