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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80g | 140*200*30mm
ISBN13 9788998164027
ISBN10 8998164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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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서미정
대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서울로 올라와 광고기획자로 살아가는 중이다. 남들은 멋있는 직업이라고 하나, 사실 그녀는 Bar & Dining을 겸한 작은 카페의 주인이 되고 싶다. 8년째 서울이란 도시에서 버티며 살 수 있는 힘은 자전거로 누비는 도심 속 여행지와 주말이면 훌쩍 떠나곤 하는 제주 덕분이다.
저자 : 이신아
지방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회사에 취직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앞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지리산 종주와 전국을 여행했고, 마지막으로 올레길을 걷다 제주도에 반했다. 한 달만 살아 보기 위해 배낭을 메고 제주에 온 것이 1년을 넘어 2년째 접어들고 있다. 남들보다 느린 건 분명하지만 남들과 다른 나를 찾아가는 건 확실하다.
저자 : 한민경
광고 카피라이터로 10년을 지냈다. 회사를 다니며 중간중간 디자인 사업도 하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과 호주에서도 살았었지만 그래도 광고 외길만 갈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야근하는 삶이 불현듯 싫어졌고, 어느 날 갑자기 제주이민을 선언했다. 이제 이민 2년 차, 이방인의 경계를 좋아해서 서울에 가면 제주로 떠난 사람, 제주에 오면 서울사람으로 불리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직원들이 쉽게 퇴사를 결정한다.
나 또한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 회사의 고참에 속한다.
나가는 이들은 무슨 꿈을 꾸고, 어떤 크기의 연봉을 원하며,
어떤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싶은 걸까?

퇴사한다며 한 주가 멀다 하고
술자리에 마주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 그들의 꿈도 희미하다.
여기만 아니면 될 것 같다는 말.
‘그곳은 다르지 않을까요?’ 라는 막연한 기대…….

그리고 몇 주 후에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여기나 거기나
일하는 강도도 비슷하고, 힘들긴 마찬가지라는 말들…….

그러나 퇴사자들과 마주하는 술자리에 앉아 있으면
떠나지 않고 남아 있는 이들이 바보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내 막연한 바람은 대체 언제가 될 것이며,
과연 이뤄지길 할까?

앞자리에 앉은 떠나가는 최 대리가 나의 빈 잔을 채운다.
오늘은 유난히 술이 쓰다.
---「#1 오늘은 술이 쓰다 」중에서

월요일 점심, 뚝배기불고기를 한 숟갈 뜨며, 김 대리가 말했다.
“나는 진짜 최 부장 같이 무능한 사람은 안 될 거야.”

화요일 답이 없는 회의 후, 최 부장이 말했다.
“야, 김 이사 안건 봤어? 그게 그 자리에서 나올 생각이냐?”

수요일, 임원 회의실에서 나오면, 김 이사가 말했다.
“사장님보다 이 일에 대해선 내가 전문가지.”

작은 물고기를 조금 큰 물고기에게 먹히고,
조금 큰 물고기 뒤엔 더 큰 물고기가 잡아먹기 위해
입을 열고 기다리는 사회라는 바닷속.
그러나 모두가 알면서 쉽게 떠나지 못해
더욱 서글픈 망망대해 같은 이곳.

직장인들은 주머니 속에 사표 하나쯤은 품고 산다지.
나는 오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제주행 티켓을 예매한다.
사표 낼 용기는 아직 없어도
금요일 밤에 칼퇴근 할 용기 정도는 있으니까.
티켓 한 장을 결제하며 나는 남은 한 주를 위로 받는다.
---「#1 망망대해 표류기 」중에서

제주에 자주 오다 보니, 차를 렌트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요즘 핫하다는 카페나 새로 생긴 식당을 찾아다니게 된다.

그리고 이 패턴을 곰곰이 보니 제주를 여행하고 있다기보다
제주에 서울 같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떠나는 여행은 제주이민자의 공간을 모두 배제한
제주원주민들이 하는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숙소는 할망민박이라는 곳을 잡았다.

제주 마을 안을 걷다 보면 올레 지정 할망민박이라는 곳이 있는데
해녀 할머니나 혼자 사는 할머니가
빈방을 숙소로 내어 주는 곳이다.
요금은 게스트하우스보다 저렴한 1만 5천원이고,
5천원을 더 내면 아침 식사가 제공된다.

이번에 묵은 곳은 해녀 할머니가 하는 숙소였는데
전날 물질을 다녀오신 뒤라서 소라, 문어, 전복까지
5천원에 먹기 미안할 정도의 해산물에
잔칫집에서 얻어온 돔베고기까지 있어
정말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다 알아 듣진 못했지만
외할머니네 집에 온 듯 편안해 아침부터 밥을 한 공기 반이나 먹었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오늘은 뭘 할까 빈둥대고 있으니
할 일이 없으면, 앞집 할망이 귤을 따는데 일손이 부족하니
거기나 가보란다.

여행자로서 하기 힘든 경험 같아서 발딱 일어나 나가는 길.
남들은 모르는 진짜 제주를 여행하는 기분에
괜스레 기분 좋은 웃음이 나온다.
---「#1 할망민박 」중에서

언니와 형부, 오빠와 새언니, 엄마한테는 통보 반, 상의 반으로 잘 넘어갔는데, 아빠한테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다가 제주도 출발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에서야 말을 꺼냈다.
“아빠, 저 제주도에 가서 살아보려고요. 아는 분이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랑 카페를 운영하시는데, 거기서 카페 일 좀 배워서 나중에 저도 카페를 차리고 싶어요.”
힘들게 꺼낸 말은 예상대로, 벽에 부딪쳤다.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아빠가 뭐라고 말씀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아빠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더 많아요. 아빠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회사에 앉아서 일하는 직업 말고도 다양한 일들이 있고, 저는 그런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라고 받아 쳤지만, 아빠를 설득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예상된 상황이었고, 반대를 한다고 해도 제주도에 가는 건 변함이 없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부모님은 하늘같은 존재였다. 특히, 아빠의 말이라면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부모님의 틀 안에서만 행동하려고 했고, 벗어나면 자책감과 불안함을 느꼈다. 성인이 되고서도 독립적이지 못하고 계속 그렇게 지냈다.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자식은 아니었지만, 선은 넘지 않았었는데, 제주생활자가 되기 위해서 처음으로 선을 넘었다. 선을 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것은 부모님이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넘지 못하게 그어놓은 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제주도 커밍아웃 」중에서

기상, 청소, 점심, 휴식, 게스트 맞이, 취침 등등.
계속 반복된 생활 탓이었을까?
엊그제는 아침부터 짜증스러웠다.
화장품을 묻혀놓은 이불,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화장솜,
배수구에 낀 16명의 머리카락,
아무도 없는 방에 켜진 에어컨,
싱크대에 잔뜩 쌓아놓은 설거지,
까지는 그. 러. 려. 니 했다.

드라이기가 뒤죽박죽 들어 있는 보관함을 보자, 폭발했다.

나는 왜 제주에서 청소만 하고 있지?
이게 내 꿈을 이루는 데 무슨 도움이 되지?
이렇게 살려고 제주에 온 거 아닌데,
제주에 온 걸 처음으로 후회하는 날이었다.
---「#2 후회 」중에서

서점에 가면, 청춘들을 위로하는 책들이 많다.
그래, 나도 너처럼 아파봤어.
그래, 나도 너처럼 방황했어.
그래, 나도 너처럼 힘들었어.
그래, 나도 너처럼 울어봤어.
그래, 나도 너처럼 좌절했어.

한결같이 청춘을 위로하는 책들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저자들의 이력들을 보면서
엘리트에 기득권으로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오고,
나보다 넓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누군가를 격려해주는 말을 한다는 게
순수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청춘들에게
평등하게만 자라온 사람들의 위로는 부자연스럽다.

뭐가 그렇게 괜찮나?
비싼 등록금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가 되는데,
어려운 취업난 때문에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는데.
그래서 일자리, 소득, 집, 결혼, 아이까지 가질 수 없을뿐더러
희망마저 없다고 6無 세대라고 불리는 그들에게
뭐가 그렇게 괜찮다, 괜찮다, 말하는지 모르겠다.
---「#2 뻔한 책 말고 」중에서

이 비행기가 나를 내려줄 제주는
내가 살던 도시와는 다른 내가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북적대던 도심 속의 삶에서 1시간만큼 떨어져 왔을 뿐이었다.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공간의 변화는 의미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과 마주할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깨어나
제주이민자의 첫날을 맞이했다.
---「#3 그대로인 너라도 괜찮아」 중에서

폭염특보가 내려진 어느 날, 만장굴을 걸었다.
온몸에 닭살이 돋을 만큼 시원하다 못해 추웠던 만장굴을 지나다가
우연히 옆에 걷고 있던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더운 날, 에어컨 틀어진 차에 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굴 입구에 우거진 나무를 보곤 누군가는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경험한 것에 비유한다.
세계 문화유산인 만장굴을 앞에 둔 사람들의 경험치가 고작
에어컨 틀어진 자동차인 게,
플라스틱으로 꾸며진 놀이동산 같다는 게 슬퍼졌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며,
여행을 더 많이 다녀서 더 멋진 세상과 제주도를 비유해보고 싶다는
오기 아닌 오기가 발동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올레길이 낫다든지,
제주도 동쪽 해맞이 도로가
그레이트 오션 로드만큼 멋지다든지 할 수 있도록
더 큰 세상과 제주도를 비유하고 싶어졌다.
---「#3 비유의 달인 」중에서

한 가정에서 쓰는 수건은 한정되어 있다.
아무개의 1st생일기념 수건이나 환갑 기념 수건,
더 나아가선 종교행사의 취임식 수건 정도가 아닐까?
그런데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보니 세상엔 그것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기념 수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둥-
내 편협한 세상이 더 작아 보이는 느낌을
수건에게 받을 줄이야.
아부다비 원자력 발전소 기공 기념,
한송 축산물 도매센터 오픈 기념,
첫 번째 헌혈 축하 기념,
백구면민의 날 기념.
세상에 뭐 이렇게 다채로운 기념의 날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수건의 수명은 꽤나 길어서
2000년대 초반은 물론 1990년대 수건도 종종 보인다.
이제 비록 제주 어느 게스트하우스에 버려졌지만
기념일을 기념하던 수건은 여전히 기념비적이다.
---「#3 수건의 역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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