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와 쇼핑을 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엄마는 나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던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나랑 함께 가고 싶다는 것이다. 운전하던 아빠가 말했다. “가고 싶으면 가면 되잖아.”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1년간의 짧은 대학생활이었지만 이미 지쳐버린 나는 “가지 뭐”라고 쉽게 말했다. ---프롤로그 「산티아고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현과 함께 걷는다. 그러다가 점점 앞서서 걷는 나, 뒤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정현. 걸으면서 정현과의 거리를 확인한다. 때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다. 내 눈과 마음에 아름다운 풍경을 새기고 싶다. 갑자기 이 광경이 우리 인생에 투영된다. 지금처럼 나와 정현은 함께 걷지 못하고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며 살아온 게 아닐가. 정현은 앞서 걷는 엄마를 보며 따라가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더 힘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따라잡을 수 없어서 좌절할지도 모른다. “엄마 같이 가”라며 마음을 드러낼 아이가 아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우리 엄마는 원래 저런 여자야’라며 스스로 위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나는 멈출 수 없다. 마음과 달리 나의 발은 계속 걷고 있다. ---5일째 「앞서 가는 엄마, 따라가는 딸」
바셀린을 발에 바른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사이사이 아픈 곳을 말한다. “엄마, 물집이 이렇게 됐어. 너무 아파, 아아.” 저절로 비명이 나오는 것 같다. “발이 퉁퉁 부었어.” “걸을 때마다 발목이 너무 시큰거려 오늘 걸을 수 있으려나 몰라.” “엄마, 어젯밤에 한숨도 못 잤어.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엄마, 나 오늘은 왼쪽 무릎도 아파.”---9일째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는 걸까」
난 나도 모르게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엄마의 삶'만이 옳은 삶이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런 삶만 옳은 건 아니다.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다. 엄마는 정말 설득의 천재인 것 같다. 20년 동안 내 머릿속은 ‘엄마가 인정하는 게 옳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생각을 해야 할 때다. 산티아고 순례 길에 오기 전, 생각했던 바를 다시 검토해본다.---12일째 「미안하고 고마운 이름, 아빠」
정현은 돌에 정신이 팔린 내게 돌을 줍지 말 것을 명한다. “엄마, 하루에 작은 거 한 개만 주워”, “오늘은 그걸로 끝이야” 하면, 나는 “알았어. 그냥 보는 거야”라고 말하지만, 돌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정현이 앞서 간다. 저만치 서서 나를 기다린다. 오늘 나는 느리다.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걸어간다. 정현이 내가 좋아하는 납작한 흰 돌을 내밀며 말한다. “엄마, 오늘은 이거 줄 테니 절대 줍지 마.” ‘고맙다, 나를 이해해줘서.’---13일째 「돌을 줍는 40대, 말리는 20대」
걸으면 걸을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엄마와 나는 확실히 속도가 다르다. 엄마는 초반에 힘을 내서 도착을 빨리 하고 쉬는 편이고, 나는 더 느리게 걷고 또 자주 쉬어가며 걷는다. 아마 이렇게 우리가 다른 것은 비단 카미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의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겠지. 엄마는 엄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내가 아무리 엄마의 성격이, 엄마의 방식이 좋다고 생각해도 엄마의 길과 나의 길은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그 방식을 따를 수는 없다.---22일째 「엄마의 보호자가 딸일 수도 있겠지?」
나의 딸이지만 정현이 낯설고 서먹한 순간들이 많다. 사실 그것은 몹시 불편한 감정이다. 나는 지금까지 아무런 노력 없이 정현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관계이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25일째 「우리는 한 번도 노력하지 않았잖아」
“엄마, 어제는 미안했어.”
어젯밤에 사과하려고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차가운 말투로 말이 나와서 나도 내 말투에 깜짝 놀라고 있는데 엄마가 쏘아붙였다.
“이럴 땐 ‘미안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잘못했다’고 하는 거야.”
“……”
사실 미안하다는 것과 잘못했다는 것이 뭐가 다른지 지금도 전혀 모르겠다. 당연히 내가 잘못했으니까 미안한 것 아닌가?---33일째 「미안해 vs. 잘못했어요」
정현은 마치 일찍 시작한 하루에 짜증이라도 난 듯 램프도 없이 앞서서 혼자 걸어간다. 어둠 속에서 나무뿌리에라도 걸려 넘어질가 걱정이 되어 내 램프의 수를 늘려 아이가 가는 길에 비춰준다. 그러면서 다시 생각해본다. 이런 게 엄마의 역할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이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보이지 않는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에 작은 여명이 되어주는 것. 아이는 혼자 걷기를 원한다. 아이는 언제나 독립적이길 바란다. 그러나 엄마는 언제까?나 아이의 길에 작은 불빛이 되고 싶다. 나는 이 길에서 그 빛은 아이의 뒤에서 비춰야 한다는 지혜를 얻었다.
--- 40일째 「앞으로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