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탈리아는 역사의 나라이며, 예술과 건축과 디자인의 나라이며, 음악의 나라이며, 종교의 나라이며, 와인과 요리의 나라이며, 강렬한 태양의 나라이며, 경치도 매우 아름다운 낭만의 나라입니다. 이와 같이 이탈리아는 여러모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오랜 기간 동안 살면서 전국 구석구석을 수도 없이 여행을 해왔고 또 각계각층의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들과 교류해왔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이탈리아를 제대로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를 아직 주저하게 됩니다. 왜냐면 이탈리아는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것이 자꾸 많아지고, 또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 것이 자꾸 많아지는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른데다가 사람들의 기질과 풍경도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국가라기보다는 여러 다양한 도시들이 연합된 ‘United Cities of Italy’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다양함을 모르고서는 이탈리아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 서문 중에서
이 궁전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 도제의 집무실이자 관저이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부 종합청사’였다. 그런데 다른 유럽의 다른 도시에 세워진 육중한 정청들과는 달리 완전히 개방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궁전의 모습자체로 베네치아는 사방팔방으로 열려있으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나라였음을 만천하에 알려주는 듯하다.
--- p.28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은 맨 마지막에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다 빈치가 예수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구한 모델이 알고 보니 바로 가롯 유다의 모델을 한 남자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낸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쩐지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 연약한 인간은 누구나 가롯 유다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니까 말이다.
--- p.88
기원전 218년 로마에 대한 복수에 불타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스페인 땅에서 군대를 이끌고 남부 프랑스로 우회하여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넘었는데, 그가 알프스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거점을 잡은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당시 이곳에는 켈트족의 일파인 타우리니(Taurini)족이 살고 있었다. 이 지역이 로마의 세력권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로마가 한니발을 완전히 꺾은 다음이었다. 그 후 기원전 1세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알프스산맥을 넘어 갈리아(지금의 프랑스)를 정벌하기 위해 이곳에 로마군 전초 기지를 세웠다. 이 기지는 기원전 28년경에는 ‘타우리니족의 요새’란 뜻으로 ‘카스트라 타우리노룸(Castra Taurinorum)’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쳐져 ‘아우구스타 타우리노룸(Augusta Taurinorum)’으로 굳어졌다. ‘토리노’란 지명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 p.111~112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음악 천재로 꼽히는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7일 35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삶을 마감했고, 그의 유해는 그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름도 없는 공동묘지 구덩이에 던져졌다. 그런데 과연 모차르트가 정말로 그때 죽었을까? 당시 모차르트는 복잡한 여자 문제에다가 빚이 너무 많아 이를 해결할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아예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린 다음, 아무도 모르게 장례식을 허위로 급히 치르게 하고는 배를 타고 아주 멀리 미국으로 잠적해버렸다. 세월이 흘러 유럽에서 그의 이름이 잊히자, 그는 다시 유럽으로 몰래 돌아와서는 이탈리아에 잠입했다. 그리고 어린 롯시니의 개인 음악 선생이 되었다. 롯시니는 음악에 그리 뛰어난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그를 위해 대신 작곡해준다. 그리하여 《세비야의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등과 같은 유명한 오페라가 롯시니의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실제가 아니라 이탈리아 작곡가 렌디네의 현대 오페라 《중대한 비밀》의 줄거리이다. 이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무덤이 없다는 것과, 롯시니가 37세 때 《굴리엘모 텔(윌리엄 텔)》을 마지막으로 오페라 작곡을 더 이상 하지 않은 것, 그리고 모차르트와 롯시니의 음악이 서로 비슷한 면이 있는 데서 힌트를 얻어 만든 작품이다.
--- p.133~134
그중에서 십자가가 걸려 있는 제단 뒤쪽 벽에 그려진 ‘진짜 십자가의 전설(Leggenda della Vera Croce)’이 시선을 끈다. 이 벽화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1458년에서 1466년 사이에 완성한 명작이다. 그는 아렛쪼 근교에서 태어나 피렌체와 우르비노 등지에서 활동한 초기 르네상스시대의 화가이다. 이 벽화는 13세기 중반 야코포 다 바라지네가 쓴 《황금빛 전설》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 작품은 당시 사람들 사이에 널리 읽혀지고 있었으며 성극(聖劇)으로도 자주 공연되고 있었다. ‘진짜 십자가의 전설’은 아담이 죽은 곳에서 자라난 나무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만들었는데,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나중에 예루살렘에서 다른 십자가가 아닌 바로 이 진짜 십자가를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10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했는데,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고 기하학적이며,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은 모두 평온하고, 그림의 색상 또한 따스하다.
--- p.230~231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는 스페인 광장의 계단과 함께 1700년대 로마 후기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명소로 손꼽힌다. (…) 트레비 광장 북쪽 건물의 벽면은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어서 커다란 무대 같은 느낌을 준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거대한 조개껍질 모양의 마차에 올라서 있고, 이 두 말은 바다의 신 트리톤이 이끌고 있다. 두 마리의 말은 각각 고요한 바다와 격동의 바다를 상징한다. 오케아누스의 좌우에 있는 여신 조각들은 각각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며, 그 앞에 펼쳐진 넓은 수반(水盤)은 바다를 상징한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보면 매끄럽게 깎은 돌로 된 수반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바위와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이 광경 뒤에는 수직의 기둥들, 좌우의 조각상, 그리고 육중한 돌림띠를 두른 르네상스 건물이 이 격렬하고 환상적인 무대를 고요히 조율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의 도시, 기독교의 도시, 예술의 도시 로마는 국경, 종교, 연령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그리고 떠날 때는 로마에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하면서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진다. 그런데 누가 만든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동전을 두 번 던지면 사랑을 찾게 되고, 세 번 던지면 이혼이 성립된다는데…… 글쎄.
--- p.281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에 시레나를 경배하는 경당을 세우고 이곳을 ‘시레나의 땅’이라는 뜻으로 ‘수렌툼(Surrentum)’이라고 불렀다. ‘소렌토’라는 지명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무사(Musa : 영어로는 ‘뮤즈Muse’) 여신의 딸들을 세이렌(Seiren)이라 했고, 고대 로마인들은 시레나(Sirena)라 했는데, 이들은 머리는 여자이고 몸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시레나는 케트라를 연주하거나 피리를 불었으며 달콤한 노래를 불러 뱃사람들을 넋을 잃게 한 다음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고 한다. 이 전설의 무대가 바로 나폴리와 소렌토 앞바다이다. 한편 시레나의 모습은 중세에 인어로 바뀌는데, 상반신은 여인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띠게 된다.
---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