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가 서 있는 나라
포르투갈의 양배추는 줄기가 길고 키가 크다. 접시꽃처럼 잎이 어긋나게 나는데 줄기에 좌우 교대로 한 장씩 커다란 녹색 잎이 난다. 식용으로 수확할 땐 담뱃잎 뜯듯 한 장 한 장 잎을 뜯어 묶는다. 그래서 시장에 출하된 양배추는 줄기라든지 둥그런 몸통은 찾아볼 수 없고 온통 이파리뿐이다. 땅 위에 곧게 선 양배추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래도 시골 농가까지 가서 보여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겠다 생각하며 버스로 마을을 달리던 찰나, 웬걸, 가정집 텃밭에 양배추가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도로 옆 평범한 집이었는데, 대문에서 현관까지 손바닥만 한 뜰에 말로만 듣던 길쭉한 양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그 후로 눈여겨보았더니 꽤 여러 집이 적게는 한 그루에서 많게는 여러 그루까지 양배추를 직접 키우고 있었다. 본디 양배추가 속이 둥글게 드는 식물이 아니란 사실은 알았지만, 실제로 땅 위에 곧게 자란 양배추를 목격하고 또 그걸 일상적으로 먹는 나라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야채 역사의 현장을 여행하는 듯싶어 묘한 감개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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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한 식물, 감자
생전 처음 감자를 본 유럽인들은 기존 야채와 닮은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이 야채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탈리아인은 땅속에서 나는 울퉁불퉁한 덩이줄기를 보면서 알버섯을 떠올렸고, 프랑스인은 둥근 모양을 사과에 비유해 감자를 ‘땅속의 사과pomme de terre’라 칭했다. 어느 나라든 감자가 땅 밑에서 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순무나 당근도 모두 땅속에서 나지만 그들이 아는 뿌리채소는 뿌리가 굵다란 작물이었다. 일반적으로 뿌리가 굵은 야채들은 상부가 땅 위로 살짝 솟아나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감자는 지하의 완전한 암흑 속에서 한 개도 아닌 여러 개가 덩어리를 이루는 데다 크고 작은 덩어리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이를 수상하게 여겼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식을 하고 자손을 늘리는 식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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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속 산초는 왜 고추로 바뀌었을까?
각 나라에서 고추가 정착되는 과정에 놀랄 만큼 큰 차이가 벌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거의 같은 시기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인도처럼 고추를 사랑하는 나라에 비하면 일본인들은 오랜 기간 시치미(고추를 비롯해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일본식 향신료) 정도에나 사용할 뿐 거의 먹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고추가 왜 그토록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가설이 있다. 기온이 낮은 곳에서 재배 가능한 야채가 한정되어 있기에 고추가 효과적인 비타민C 공급원으로 환영받았다는 설, 본디 한반도에는 쇠고기를 먹는 문화가 있어 고기를 보존하거나 냄새를 없애려고 산초를 많이 이용했는데 고추가 산초보다 한층 더 자극적이고 독특한 풍미를 지녀 인기를 끌었다는 설 등이 있다. 비타민C 보충설의 경우 고추를 이용해 배추로 김치를 만들면서부터는 일리가 있을지 모르나 고추만 가지고 비타민 부족을 메웠다고 하기에는 억지스러운 감이 있다. 또 산초 대용설의 경우도 나름대로 설득력은 있지만 어째서 갑자기 오랫동안 먹어온 산초를 고추로 바꿨는지에 관해서는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
--- p.111쪽
가지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
가지는 다른 진기한 식물이 그랬듯 그다지 환대받지는 못했다. 남쪽에서 왔다는 이유로 신대륙에서 온 괴상한 식물인 줄 알고 일단은 관상용으로 둬보자고 한 사람도 많았다. 이탈리아에서도 당시엔 가지에 독이 있다고 하여 피했다. 하지만 베네치아에 살던 아르메니아인 크리스트교도가 가지를 먹어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북이탈리아에서도 조금씩 먹었다. 가짓과의 야채는 감자든 토마토든 모두 유해물질이 있다고 보고 경계했다. 솔라닌 같은 독소를 품기도 하니까 처음 먹어보는 야채를 신중히 다루는 행동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프랑스나 영국 등 북쪽으로 갈수록 가지에 대한 편견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영국에서는 소돔의 사과나 미치광이의 사과와 같이 모멸적인 별명을 붙이거나 최면을 유발한다고 하여 가짓과 식물을 밤의 그늘nightshade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영국에 전해진 하얗고 작은 가지에는 특히 솔라닌이 많이 함유되어 아이들이 먹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는데,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프랑스에서도 남쪽은 아랍인이 사는 스페인과 가깝기에 가지를 잘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프랑스 방언에 ‘바보 가지’라든지 ‘멍청이 가지’ 같은 별명이 붙는 등 설 자리가 좁았다. 가지에 이렇다 할 확실한 맛이 없어 바보나 멍청이라고 불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의 중심에서 북쪽에 걸쳐 자신들이 유럽을 형성하고 지탱한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진 국가들에게는 남쪽 지중해 부근 사람들이 거칠고 난폭하며 촌스럽고 가난하다는 편견 가득한 착각도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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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쩍 벌어질 만큼 비싼 사프란
사프란은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비싸다. 사프란 꽃 하나에 암꽃술이 세 개 달리는데, 재배종은 암꽃술의 머리기둥이 길게 자랐다가 축 처지면 손으로 따서 말린다. 나도 작년에 농원에서 키우던 사프란이 꽃을 피웠기에 암꽃술을 수확했다. 손가락을 노랗게 물들여가며 허리를 구부려 작은 머리기둥을 뜯는 일은 품이 많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1그램의 암꽃술을 위해 꽃이 3백 개 필요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꽃 10만 개에서 암꽃술 5킬로그램을 뜯어 말리면 1킬로그램이 된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1킬로그램을 건조하려면 꽃이 10만 개가 아니라 30만 개 혹은 50만 개가 필요하다는 등 계산이 각각 다르다. 우리 밭에서 키운 사프란은 너무 적어 계량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채취하는 데 손이 많이 가기에 사프란 가격의 대부분은 인건비다. 일찍이 이런 사실에 착안해 사업을 모색한 사람도 있었다. 영국 정부는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사프란 붐을 보고 사프란 재배로 실업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노동력이 공장으로 향하면서 계획은 좌절됐다.
--- p.149쪽
야채의 세계지도에는 국경이 없다
인간이 국경이라는 선을 긋기 훨씬 전부터 야채의 선조는 생존해왔다. 야채를 섭취한 새가 씨앗을 옮기거나 혹은 인간이 새로운 땅으로 운반했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은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재산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자라왔다. 그러니 당근이든 뭐든 원산지가 어디인지, 국경 이쪽인지 저쪽인지에 천착해봐야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식물의 원생 야생종 찾기가 중요한 이유는 자기 나라가 원산지임을 주장해 명예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래된 식물로부터 전해 내려온 원초적인 형질이 미래의 품종을 개발하고 개량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이 야채와 곡물의 어미씨를 발견하는 데 힘을 쏟고 있으며, 식물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분쟁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 p.156쪽
두렁콩 심기를 시작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자
일본 원산인 야채가 거의 없기는 해도 대두를 그중 하나로 포함시켜도 되리라. 된장, 간장, 두부, 낫또 모두 대두가 없으면 만들 수 없는 식품이다. 특히 된장과 된장에서 추출한 간장은 일본요리와 일본인 미각의 근간을 이룬다. 대두는 18세기 들어서야 서양에 알려졌고, 중국에서 바닷길을 따라 유럽에 전해졌다. 여기서 다시 미국으로 흘러간 모양인데, 함선을 끌고 일본을 찾은 페리 제독도 1854년에 일본에서 대두를 가지고 돌아갔다. 미국은 1896년이 되어서야 콩 재배를 시작했음에도 20세기 들어 생산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지금은 세계 제일의 대두 생산국이다.
일본인의 식생활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대두를 지금은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온다. 그중 절반은 미국 수입품에 의존하니,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일본이 미국에 덜미를 잡혀 꼼짝할 수 없게 된 이유는 된장과 간장의 원료 공급을 미국이 독점하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미국이 생산하는 대두가 대부분 석유나 식용유를 만드는 제유의 원료 아니면 동물 사료용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더더욱 내셔널리즘에 자극을 받는다. 우선은 콘크리트로 막혀버린 논두렁을 흙으로 되돌리고 두렁콩을 심는 일을 시작으로 미국으로부터 독립할 길을 찾음이 어떠할지.
--- p.162쪽
뉴욕에서 느끼는 중동 음식
거리를 걷는데 따뜻한 김이 솟아오르는 포장마차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팔라펠을 파는 가게였다. 팔라펠은 두부를 으깨 동그란 경단처럼 만들어 기름에 튀긴 음식으로, 토마토나 오이 등 야채와 함께 얇은 피타빵 속에 넣어 먹는다. 콩은 누에콩이나 병아리콩을 쓴다. 다진 양파와 마늘, 거기에다 고수를 비롯한 여러 향신료를 섞어 동그랗게 만드는데, 이와 비슷한 콩요리를 즐겨 먹는 습관은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등 지중해 동부 해안, 아라비아 반도 남부, 이란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범위에 걸쳐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도이며, 이스라엘의 유대교도는 지극히 소수파다. 그러나 종교와는 별개로 공동의 중동 식문화를 즐긴다. 팔라펠을 받아들자 두 손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같은 풍토에서 자라, 같은 식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왜 이렇게 무모한 다툼을 계속해야만 하는 걸까.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누에콩이나 병아리콩, 육두구나 사탕수수를 둘러싼 세계의 역사가 되살아난다. 인간은 콩과 야채와 곡물이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추운 지역에서는 육류도 필요하지만 약간이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흔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장가치가 높아져서인지,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는 향신료나 설탕 같은 사치품들에 높은 가격이 책정되었다. 들판에 자라는 들풀에서 소중히 야채를 길러내던 인간의 소박한 삶은 어디로 갔을까. 도를 넘어선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대체 어디까지 이어질까.
---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