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의 비합리적인 권위의식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자의식이 매우 강함을 볼 수 있다. 결혼이라는 관계맺음 속에서 '나인 것'과 '나와 다른 나를 강요받는 것' 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즈음, 내 안에서 마음이 열리고 어떤 타협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밖으로부터 어떤 강제가 작용해 들어온다는 사실은 이들 여성들에게 있어서 견디기 힘든 것이다. 며느리와 시부모 관계가 결혼 후 극도의 갈등상태로 발전하기까지 결코 오랜 시간이 경과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이들의 관계가 어떤 타협이나 조율의 노력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측면이다. 관계에 등을 돌린 채 스스로를 변론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성을 두터이 쌓아올리는 생존의 논리를 체득해나간다. '각자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다'라든가,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 pp.267-268
따로 나와 있어도 장남이기 때문에, 떨어져 있지만 (남편) 마음이 늘 거기 식구들한테 가 있는 거. 그리고 내가 어떤, 그 식구들에 대한 구상도 세우기 전에 미리 체크를 해주는 거. 그런 거에 대해서 많이 트러블이 있었어요. 나도 내가 맏며느리고 만약에 예를 들면 생신이 언제다 하는 걸 알아요. 어른 생신은 당연하게 챙기겠지만 밑에 동생들 같은 경우에는 인제, 그거에 대한 마음이 못 미더운 거야. 만약에 한 1, 2주 정도 앞질러서 '누구 생일이 언제다' 이러구 쓱 스치는 얘기로 하면 마음 다 읽고, 달력에 다 체크해 놓고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왜…… 할려고 하는데다 뭐라고 하면 더 하기 싫고 막ㅡ 삐치고 그랬는데, 아무튼 그런 사소한 걸로. 나는 내가 또 막내기 때문에 집에서 받고 자랐잖아요. 어떻든지, 형제들 사랑 받고, 엄마 사랑 받고 그러고 컸는데 장남이기 때문에 내가 가져야 될 사랑이 많이 뽀개져 나누어지는 거에 대해서, 성격이 그래도 육남매 중에 원만하다고 그러고 자랐는데, 그걸로 인한 질투심이라고 그럴까, 그런 게 생기더라구. 그래서 그런 거 때문에 결혼초에는 많이 트러블이 있었고 근데 그걸 잘 맞춰가고 나도 양보하고 자기도 조금 맡길려고 노력하고 그런 거에 대해선 서로 얘기를 하지. '그렇게 하면 나는 더 못해진다. 그러니까 나를 믿고 아주 잊어버리든지 그럼 내가 책임감을 갖고 하든지 그러겠다' 그러면 또 믿고 자기도 또 그렇게 해보고 하니까 또 인제 지금은 오히려 고맙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변해가요 슬슬. 그리고 나도 인제 많이, 벌써 맏며느리로 7년, 8년째 접어드니까 나 혼자 생각했던던 거, 그런 게 닳아지고 가족들 속에서 융화가 되고 그러니까 많이 무던해지고 두리뭉실해지니까 같이 합쳐져도 살아지게 되고. (하영란, 35세, 사례g)
--- pp.205-206
결혼상대자가 장남이나 외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해 여성들이 보이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와 결혼 결정 자체를 망설일 정도의 장애요인으로 느끼는 태도. '장남과 외아들이랑은 결혼하지 말라'는, 여성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이야기들을 익히 들은 바 있지만 실제 자신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그 의미가 구속력있는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던 적잖은 수의 여성들이 관찰되기도 한다. 반면에 주위 사람들, 특히 어머니의 반대나 결혼한 언니의 적극적인 충고에 부딪히면서 고심했다는 많은 여성들의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결혼상대가 정해진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반대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성장기부터 간접적으로 체험된 어머니의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그 맥락이 닿아 있는 - 자신이 '장남과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한 여성의 표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 스스로 다져온 의식의 결과로 장남과의 겨혼을 기피하기도 한다.
---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