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인간 중에서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포만큼 실체가 없는 것도 드뭅니다. ‘두렵다는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감정일 뿐입니다. 공포는 반응의 일종입니다.
어린아이들을 한 번 보세요. 낯선 것, 모르는 것, 생소한 것에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럽게 큰 소리가 나면, 아기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런데 그 울음이 예방이나 치유의 조치일까요? 운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거나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바꿀 수 있지요. 바로 어른들의 반응입니다. ---p. 40
아기가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우고 더 이상 손가락을 빨거나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게 되듯이, 우리의 감정도 훈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제까지 그 방법을 몰랐던 것뿐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거나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사용법에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관계의 평화를 만들어내고, 나 스스로를 정신적?육체적으로 갉아먹지 않게 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p. 64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난 걸까?”, “저 사람은 누구 때문에 화를 내는 거지?” 하고 인과관계를 탐색하는 대신, ‘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면 이러한 인간 행동의 진정한 동기를 훨씬 더 확실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왜(Why)” 혹은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은 물리적 현상을 탐구하기엔 매우 적합한 과학적인 질문입니다. 하지만 정서나 감정 차원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적절하지 못합니다. 그 질문을 통해서 알아낸 ‘답’이 궁극적으로 정서나 감정 상태를 개선시킬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p. 72
우리가 하는 다툼의 대부분은 바로 이 경우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소한 것들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태반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누군가가 자기 일을 제대로만 한다면, 모든 게 훨씬 더 쉽고 즐거울 텐데.” 그런 단순한 것을 어김없이 챙기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은 대부분 그런 단순한 것들입니다. ---p. 114
많은 경우 우리는 스스로에게 더 엄격합니다. 아니, 엄격하다기보다 잔인하다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지속적인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만 실패를 맛보아도 그것이 곧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라도 할 것처럼 두려워합니다. 만약 스스로를 좀 더 깊이 신뢰한다면,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고집 센 에고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일수록, 스스로에게 덜 잔인하게 굽니다. ---p. 128
다른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용기’입니다. 만일 당신이 ‘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인식된다면, 아쉽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당신에게 ‘부탁’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부탁을 들어주었다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앞의 경우처럼 힘들었음을 하소연이라도 하게 되면, 부탁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평소와 다른 당신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바늘 끝이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날카롭게 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협력이 아닌 복종을 요구하거나, 당신의 연약함을 이용해 이기적인 목적을 채우고자 한다면, 그것에 대해 과감히 “No!”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존엄성은 당신 자신만이 세울 수 있으며, 당신의 자유 역시 다른 사람의 이기심에 쉽게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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