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이탈이 빚어내는 관계의 기술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대학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한 학습모임에서 시작되었다. 1929년 어느 여름날, 운명적으로 만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이들은 서로가 적실한 지적?정신적 동반자가 될 것임을 깨달았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사유를 이해하고 정신적인 교감이 가능할 대등한 여성으로 보부아르를 발견했고, 보부아르는 그 당시 보수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동등한 인격으로, 평생을 함께할 지적?정신적 동반자로 사르트르를 선택했다.
이들 연인은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서로의 모든 경험을 추호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서로의 지성?감성을 최대로 고양시킨다. 두 사람은 생계를 부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사직을 맡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보부아르는 제자였던 올가 코자키에비츠부터 연애편력을 시작한다. 이어서 올가의 동생인 완다 코자키에비츠, 사르트르의 제자였던 자크 롤랑 보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서로 뒤섞여 복잡한 관계의 극치를 이룬다. 사르트르는 이들 말고도 메를로 퐁티의 연인이었던 마르틴 부르댕과 관계를 맺기도 했고, 후에 보부아르의 또 다른 제자인 나탈리 소르킨이나 비앙카 비넨펠트와 같은 소녀들과도 염문을 뿌렸다. 두 연인을 주축으로 한 제자들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맺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런 복잡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자신의 경험을 철저하게 상대에게 보고하고 이를 납득했다. 사르트르가 징집되어서 군복무를 하고 있던 도중에도 이들 연인은 일기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온전하게 둘이 아닌 하나의 삶을 살았다. 저자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를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이들이 이런 복잡한 관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그 근거로 이들이 마지막까지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2장 시몬과 카스토르
몰락해가는 부르주아 가문에서 성장한 보부아르는 완고하고 보수적인 부모 슬하에서 자라났지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의 소유자였다. 저자는 보부아르의 성장배경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두 사람의 관계에서 보부아르의 위상을 재배치한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의 일방적인 지적 추종자였다는 식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그 근거로 보부아르가 당시 보수적이고 남성우월적인 풍토임에 불구하고 가졌던 영향력이나 그녀의 천부적인 학습능력, 과감한 실천력 등을 들고 지금까지 어느 지성도 그녀만큼 솔직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비판한 사람은 없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3장 사르트르 또는 처세술로서의 배반
사르트르는 아버지는 일찍 여의었지만 교양 있는 외할아버지의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부족한 것 없이 주위의 호의와 기대 속에 가지고 있던 재능과 자부심을 맘껏 키우면서 자라난 전형적인 천재였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배반했다. 그리고 그 의심과 배반을 처세술로 삼았다. 그는 “본질적인 구조”속에서만 자신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연애 취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여자들과 직접적인 성교에서 만족을 얻기보다는 길고 오랜 애무를 통해서 여자들이 온몸으로 색깔 있게 자신을 표출하는 애정의 방식(일종의 관음증과도 유사한 방식)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 그의 글쓰기는 그의 존재를 표현하는 당위 명제와도 같았다.
4장 발단과 계약
이 장은 ‘계약결혼’으로 유명한 이들 커플이 어떻게 이런 계약을 맺게 되었고 이 계약을 어떻게 지켜나갔는가에 대한 보고이다.
자유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최고의 가치였다. 이들 커플은 계약을 맺고 나서 수없는 시련에 부딪혔다. 보부아르가 겪었던 사르트르의 오랜 친구 피에르 귈르와의 연애사건, 사르트르, 보부아르, 올가가 함께 호된 시련을 경험했던 삼각관계, 사르트르의 마약 복용으로 인한 환각상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이런 시련들을 극복해 내고 “두 개인 사이에서의 조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하지 않았고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조화를 만들어냈다.
5장 이 세상 내부의 세상
사르트르와 돌로레, 보부아르와 앨그렌의 겹치기 연애. 이 마지막 불꽃같은 연애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두 사람 모두 계약을 파기할 정도로 격렬한 연애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관계는 유지되었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두 사람은 왕성하게 활동했다. 자유와 행동은 그들의 모토였다. 그들은 인생의 동반자로 마지막 가는 길 위에서 섰다. 사르트르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 보부아르에게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겼고, 보부아르도 그들이 오랫동안 하나일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사르트르가 죽은 뒤 정확하게 6년 뒤 보부아르도 사르트의 뒤를 따랐다. 이들은 몽파르나스의 무덤에 함께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