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많은 수의 국영기업들이 기술적 최적화의 기준에 따르면 비효율적으로 일한다. 물론 위기의 시기에 이들은 대량의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미 수백만의 시민들이 주변화 되었고 수백만이 그 일자리와 자녀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된다면 이 탈규제화는 한마디로 정치적 살인광기에 불과한 것이다.
--- p. 245
최소한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지구화,세계회는 단지 온 세상의 '미국화'정도에 불과하다 뫼리츠 같은 이윤사냥꾼들한테는 금융시장 세계화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미국이 우리를 위해 발칸 반도의 전쟁에 개입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정도 그 대가를 치러야한다'.그러나 이러한 예속성이 초래하는 경제적 해악은 그만큼 엄청나다.이것은 미국한테도 역시 아무런 위험 없이 진행 되는 것이 아니다.미국의 거대 자본이 엄청난 위력과 함께 온 세상을 점령 하고자 한다면,미국의 거대자본이 엄청난 위력과 함께 온 세상을 점령하고자한다면,이제는 당하는 나라들도 공격적인 저항을 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 p.152~153
최고 경영자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까지 잘 알고 있다시피, 두려움이란 결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어쩌다가 중대한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기업의 경영자들이 경영과정에서 생기는 엄청난 근심걱정을 단순히 감추어 버리고 앞만 보고 달려가게 된다면, 그들은 금방 대단한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과도한 링엔지니어링이나 아웃소싱, 아니면 다운 사이징을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게 된다면, 위기로부터 자신을 구출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새로운 시대적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보다는 눈감고 도망가려 하거나,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단지 수세적으로 머물고자 한다면, 이것은 이미 실패가 예고되어 있는 바와 다름 없다. 변화된 세상의 글로벌 플레이어들이시여, 당신들은 당신들이 활동하고 있는 정치계, 금융계, 언론계, 그리고 경제계 등의 각 영역에서 도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 단지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함께 저지르는 사람들에 불과한가, 아니면 미리 계획해서 의도적으로 일을 벌이는 사람들인가?
--- p.343-344
이 책의 지은이들에 따르면, 범지구적 세계화 물결 속에서 사회복지 측면이나 민주주의 측면, 그리고 생태계 측면 모두에서 <20대 80의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각 나라에서, 그리고 지구촌 전체에서 오로지 약 20퍼센트의 사람들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된 생활속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며, 그 나머지 80%의 대다수는 실업자 상태 또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싸구려 음식, 그리고 매스컴에서 뿜어대는 상업적 대중문화 속에서 그럭저럭 살아나가야 한다.
이들 대다수는 소수가 생산해내는 부에 빌붙어 먹고 살아야 한다. 비롯 지은이들이 유럽사회를 중심으로, 또 유럽인의 눈으로 이 문제를 따져내고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유럽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코 이것은 지구촌의 평범한 사람들, 우리 모두한테 해당되는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범지구적 경쟁의 격화 - '세계화' - 는 각 나라의 노동자들로 하여금 생산성과 원가, 품질 등의 여러 측면에서 살인적 경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기업들은 경영관리 및 생산과정의 혁신, 그리고 노사관계와 조직문화의 혁신을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언론매체나 학자들이 쓴 교과서적 이야기들은 우리가 이러한 경쟁과 변화의 시대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않으면 우리한테 장래란 없는 것처럼 강조한다.
세계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제전쟁에서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합심해서 생산성을 올리고 품질을 향상시키며,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더욱 더 기능향상을 위해 힘써야 하며, 노동조합이라든지 노동운동 같은 것에는 신경을 꺼야 한다고 말한다.
--- pp. 13-14
민주적으로 조직된 사회는 유권자들한테 경제적인 생존을 보장할 뿐 아니라 모든 개인의 권리와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때 안정될 수 있다. 그래서 민주적인 정치가는 사회적 형평을 관철해야 하고 때때로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동시에 시장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기업가적 자유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개인의 이익에 대한 열망이 새로운 경영혁신과 투자를 통해 부를 창출할 모든 힘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기업가와 주주들은 항상 강자(자본)의 권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서구정치의 위대한 성공은 이 양극 사이의 올바른 균형을 발견하고자 한 데 있다. 40년 동안이나 서독인에게 평화와 안정을 보장해 준 '사회적 시장경제'의 배후에는 바로 이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바로 이 균형이 깨지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국가의 조정 가능성이 소멸하면서 점점 더 강자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세계경제는 과거 전성기의 경제 건설자들이 남긴 교훈을 철저히 무시하고 이를 팽개쳐 버렸다. 지속적인 임금삭감, 보다 긴 노동시간, 삭감되는 사회보장급부,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완전한 포기를 통해 세계적 경쟁에 대비하고자 하며, 이러한 난관을 잘 견딜 수 있게 국민들을 준비시키고자 한다. 대부분의 대기업 사장들이나 자유주의 경제정책가들에게는 그들에 반대하는 모든 시도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노력들은 이들에게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들을 수호하려는 무모한 시도일 뿐이다. '세계화'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고, 그들은 이를 산업혁명에 비유해서 말한다.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19세기 영국에서 기계를 파괴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몰락할 것이라 한다.
--- p.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