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더 잘 살아가도록 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잃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과 실제 사회 사이의 괴리가 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수단의 목적화’ 때문이다. 예컨대 정부가 내놓는 학습지도요령은 대강의 기준에 불과한데, 교사들은 그것을 ‘절대적 기준’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습지도요령을 꼼꼼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교과서 순서대로 수업하는 교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수단’이어야 할 학습지도요령과 교과서가 ‘목적’으로 둔갑해 반드시 소화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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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의 모든 학교가 숙제를 낸다. 숙제를 내는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는 ‘아이들의 학력 신장’, ‘학습 습관 형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숙제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을까? 집에서 열심히 숙제하는 아이들의 실태를 떠올려 보자. 가령 숙제가 수학 계산 문제 스무 개라고 하자.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인지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워 버린다. 반면 수학이 약한 아이나 해당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풀 수 있는 문제만 풀고, 못 푼 문제는 다음날 그대로 제출하는 일이 다반사다. 스스로 학습하는 힘을 키우고, 자신이 ‘모르는’ 문제를 ‘알게 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숙제는 그 점을 간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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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학습 능력을 ‘특정 시점’에 평가하는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중간고사를 치른 5월 말에는 못 풀었지만, 7월 하순까지 완벽히 습득하면 성적표 평가를 가장 높은 ‘5’등급으로 매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일찍 아나, 조금 늦게 아나 무슨 상관이 있는가 말이다. 시험은 왜 치는가? 학습 능력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다. 그 밖의 다른 이유가 붙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도 ‘목적과 수단’의 왜곡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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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마치 중학교에서는 수첩도 노트와 마찬가지로 교사가 거둬서 평가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노트와 똑같이 교사에게 제출하기 위해 수첩을 채우게 되면, 애초의 목적이 훼손된다. 수첩은 어디까지나 자율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다. 원래는 수첩 구성 중 어디에 무슨 내용을 적을지도 아이들이 직접 생각하고, 궁리해서 결정해야 한다. 자신의 특성을 알고, 제어하고, 방법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배움이다. 우리는 지금도 더 나은 수첩을 만들고자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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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답은 교육의 본질 회복, 또는 과거의 학교 떠올려 보기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지, 만들어진 제도 안에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학생, 학부모, 교사가 최상위 목적을 잊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쌓아올려야 한다.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다. 자기 주변의 과제를 해결할 때 대화를 중시하고 합의하는 경험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게 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해서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 작은 개선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변화가 생기는 법이다. 나는 자율적으로 생겨난 풀뿌리 같은 활동이 큰 물결로 바뀌어 언젠가는 교육을 본질적으로 개혁하기를 기대한다. 결국에는 완전히 바뀌는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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