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대한 신앙과 같은 갈증으로 늘 목이 메마른 김용희 교수가 소설을 썼다. 반짝이는 재기와 발랄한 감성이 팽팽하게 이야기를 몰고 나가 긴장미를 내뿜는다. 모처럼 살아 있는 서사의 재미를 맛보게 한다. 여자의 고향은 청춘이라고 했던가. 자신의 세대에게 바치는 야무진 소설 한 편을 씀으로써 그녀는 아름다운 고향 하나를 갖게 됐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우리 평단의 기린아 김용희가 소설에 마수를 뻗는 사고를 쳤다. 이 사고가 문단을 뒤흔드는 대형사고가 될지, 자신의 문학을 성숙시키는 페넬로페의 옷감짜기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성에 눈떠가는 10대 소녀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통해 세상과의 불화, 그리고 마침내 화평의 언어를 배워가는 이 소설은 성장소설의 역동성은 물론 여성과 남성, 활자문화와 영상문화 사이의 긴장이 주는 삶의 생산적 의미를 창출한다. 소설로서 처녀작이 될 이 소설을 딛고 인생이라는 영원한 성장의 기록을 앞으로 더욱 풍성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김용희에게 기대한다. 그 자신의 모습이 그러하듯이.
김주연 (한국번역문학원장, 문학평론가)
내가 아는 김용희는 시를 잘 읽어내는 명민한 문학평론가이지만,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에 대한 감식안 또한 예리하고 풍요로운 사람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사람살이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만큼 남다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그 남다른 애정이 소설로 드러난 결과물이다. 자기 또래의 여자들이 살아온 시공을 세밀화 그리듯 촘촘한 눈으로 들여다보면서도 감상에 빠지는 법이 없다. 소설 속 이야기는 따듯하되 가볍지 않고 진지하되 엄숙하지 않아서 편하게 읽힌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소녀들과 함께 낄낄거리다 문득 마음 한켠이 싸해진다. 저마다의 성장통을 지나는 소녀들을 불러 가든파티를 여는 따뜻하고 솜씨 있는 소설이다.
김선우 (시인)
열여덟 살에는 누구나 소녀였다. 『란제리 소녀시대』를 읽으면서, 나도 한때 소녀, 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1979년 18세 대구 소녀 이정희 양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 ‘짧고 빛났던 생의 한때’가 지금 여기 애틋하게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내 작은 소녀와 함께, 이 음악을 간절히 듣고 싶어진다. 헤이 주드~
정이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