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시대에 철학은 정말로 그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취해서 입담을 과시하는 술잔치의 철학, 카페의 철학. 그렇지만 우리 시대의 고질병인 나르시시즘에 취한 입담이 아니라 부단한 훈련을 통해 자기를 극복하고 함께 사는 사회를 생각하는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 말이다. (…) 개인과 사회에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를 알면서도 어차피 소용없다는 패배주의와 무력감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실천’이란 말은 지나친 무게감을 지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천이 반드시 타인을 향한 행동일 필요는 없으며 가시적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마음을 터놓는 대화, 내 안에서 죽어가는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 혼자만의 다짐, 그 모든 것을 철학적 실천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사회는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붕괴되었던 게 아니야. 안에서부터 붕괴됐지. 시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몰락하면서 말이야. 그들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경멸하게 됐지.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성가시게도 옛 아테네 시민들의 영광을 자꾸만 들먹거리니까 패거리를 이루어서 그를 제거해 버렸던 거야. 민주주의, 곧 ‘민중의 힘’이 아테네를 지배하고 시민들이 다함께 더 높은 선을 위해 일하던 그 시절의 영광 말이야. (…) 걱정이야. 우리가 사는 시대가 퇴락의 길을 걸었던 옛 아테네 사람들처럼 사랑을 모르게 될까봐……. --- 「프롤로그」 중에서

그 테러범은 어쩌다가 그렇게 걷잡을 수 없는 증오를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런 짓을 자신이 섬기는 신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해야 그를 무조건적 사랑의 길로 인도해서 무조건적 증오의 행위는 생각조차 못하게 할 수 있을지……. 우리는 증오를 허락하기에 앞서 먼저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어째서 증오에 가득 차 있는가? 어째서 타인들은 나를 혐오하는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나를 증오할 권리가 있는가?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책임이 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증오해야 하는가? --- 「아가페 : 누가 루지카를 죽였는가?」 중에서

소크라테스적인 연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저것이 아니라 이것을 사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저런 식으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열정을 갈고닦았으되 똑같이 심사숙고를 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이 문제를 논할 수 있다. 더욱이 나는 이런 전제를 깔고 있다. 사랑에 대해서는 아무리 배워도 배울 것이 남아 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틀렸을 수도, 아예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사랑을 탐구하기에 변화없이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b>■ 벨파스트 분쟁지 식당, 히로시마 평화공원, 라스베이거스 도박장, 소웨토 반정부시위 천막……<br/> 전세계 다양한 ‘보통사람들’과 재해석해내는 ‘소크라테스적 탐구 프로젝트’의 완결편, 사랑!</b><br/><br/>『사랑, 그 위대한 악법』의 지은이 크리스토퍼 필립스는 아카데믹한 철학을 일상 속으로 끌어내리는 ‘카페의 철학’을 실천해가고 있다. 그 첫 단계로는 소크라테스처럼 ‘마음을 터놓는 사회적 대화’를 시도했고, 두 번째로는 전세계의 다양한 가치와 철학 들을 비교해서 살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저서 『사랑, 그 위대한 악법(원제 : Socrates in Love)』에서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를 지혜롭게 묶을 수 있는 유일한 끈,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실천’인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br/><br/>저잣거리에서 지나가는 누구와도 대화를 통한 토론을 즐겼던 소크라테스처럼, 크리스토퍼 필립스 역시 “소크라테스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팻말 하나만을 들고 다니며 전세계 다양한 공간에서 즉흥적으로 토론회를 벌여 ‘사람들간의 소통과 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 결과 철학과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보통사람들 ―노숙자, 수해난민, 재소자, 할렘가의 청소년, 참전군인, 초등학생, 채팅방의 사람들 등― 에게서 사랑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얻고 희망의 씨앗을 발견했다. <br/><br/>그러나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 카페 운동의 절대적인 의의는 ‘시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동정심은 가르칠 수 있는가’, ‘서로를 돌보는 것이 의무인가’, ‘가장 귀한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화합해야 할까’ 등의 주제를 놓고 벌인 토론회 풍경을 스케치해놓은 ‘CAFE' 꼭지를 보면, 참가자들은 토론 초기만 해도 냉소적이거나 자신의 슬픔과 세상의 부당함만을 내세우려고 하지만, 일단 대화가 시작되면 단단해보였던 편견과 오해의 장벽을 쉽게 허물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더 나아가 불평만 하던 위치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을 통해 상한 관계를 치유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회복’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br/><br/><b>■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패권주의에 빠져버린 고대 아테네의 함정, <br/> 다양성을 주장하면서도 이분법적인 투쟁을 확장시켜가는 현대 우리 사회의 함정, <br/> 진리보다는 궤변이 통하는 위기의 시대에 소크라테스에게서 해법을 찾다</b> <br/><br/>소크라테스는 제2차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로 ‘가장 자기애적인 사랑’만이 성행하고 서로가 마음을 닫고 반목하던 고대 아테네에서 살면서, 악화일로로 치닫는 고국을 걱정하며 붕괴를 막을 해결책을 모색했다. 당시 아테네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높이 들면서 전성기에 올랐지만, 이내 범그리스적인 패권을 주장하면서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의 패배가 아테네는 물론 온 그리스를 혼란 속에 빠뜨린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붕괴를 벗어나 건강한 관계로 회복시킬 수 있는 해결책은 오직 ‘사랑’의 실천 뿐이라고 말했다. <br/><br/>오늘날은 어떠한가. 전쟁마저 멈추고 평화롭게 올림픽을 치뤘던 ‘에케체이리아’의 정신은 간 데 없고, 올림픽이나 명절을 틈타서 대규모 폭격과 전쟁 도발이 일어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강도를 더해가는 ‘불통, 불관용’의 이 시대가 절실히 바라고 찾는 가치들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