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 위협하고, 많은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한국 경제에 대해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할까? 답은 쉽지 않지만 단기적 경기 대응 차원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고, 한국 경제가 어떠한 경제로 나아가야 할지, 이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긴 호흡으로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한국 경제는 사회 구성원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일한 자들이 자신의 대가를 충분히 획득해야 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가계소득 증가와 소득불평등의 감소는 사회적 협력을 강화키시고 노동의 참가를 확대함으로써 한국 경제가 건강한 토대 위에 성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p.5
최근 학계에는 노동소득이나 가계소득 증대가 내수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노동의 실질임금 증대가 총수요를 증대시킴으로써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나 유엔무역개발회의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새로운 성장모델로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을 모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노동의 실질임금 상승과 가계소득 증가는 총수요를 확대하고 투자를 촉진하며,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임금주도 성장론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의 키워드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세웠고 일본과 독일도 성장 패러다임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보고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임금주도 성장’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하는 분위기다. 임금주도 성장모델은 한국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현실 여건과, 소득분배의 형평성 제고로 경제성장을 이룩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살린다는 의미에서 소득주도 성장(income-led growth)모델로 소개되고 있다. --- p.16
이윤주도 성장에는 함정이 있다. 실질임금의 둔화와 가계소득의 정체가 내수를 침체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가계 적자 누적과 부채 증가가 금융위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이윤주도 성장의 대안으로 소득주도 성장(income-led growth)이 제시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노동의 실질임금 상승은 유효수요를 늘려 산출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산업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가계소득 증가와 소득불평등의 감소는 사회적 협력을 강화키시고 노동의 참가를 확대함으로써 한국 경제가 건강한 토대 위에 성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p.18
수출주도 성장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기업에게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국민경제에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대기업의 이윤은 늘어났지만 투자는 보수적이 되고,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성장률은 크게 하락했다. 대기업들은 많은 이윤을 사내유보금으로 보유하고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기업 성과가 투자를 낳고 투자가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 이상 어렵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수출주도 성장정책을 지속한 결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정체하고, 가계는 빚에 허덕이고 있다. 가계는 부족한 생활비를 은행 대출로 충당하거나 주택 매입을 위해 대출을 함으로써 가계 빚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 p.26
소득주도 성장은 실질임금과 가계소득 증대를 통해 내수를 증진하고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한국 경제의 수요체제나 생산성체제에 관한 선행 연구들은 한국 경제에서 소득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질임금 증가, 가계소득 증진은 총수요를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실질임금 상승이나 복지 증대가 단지 비용 상승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임금 상승이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총산출을 증가시킴으로써 투자를 촉진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 p.68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자본소득분배율은 급격하게 올라갔으며, 이 비율 또한 주요 선진국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자본소득은 노동소득에 비해 훨씬 더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생산과 분배 과정에서 자본의 몫이 증가하는 것은 결국 개인별 소득분배의 악화로 나타나게 된다. 소득의 집중 강화는 결국 부의 집중을 강화할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인구마저 정체되면 부의 집중은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분산된 세습이 아닌 집중된 세습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부의 집중도는 더 올라가고 동시에 전체 부에서 상속된 부가 차지하는 비율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 p.131
실제로 선진 시장경제를 보면, 각국의 성장전략, 사회보장체제, 교육제도, 노사관계, 산업정책, 금융시장 개별 구성요소들은 나라별로 매우 상이하다. 사실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렇지만 그 요소들이 일국 내에서 매우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 선진 시장경제들이 가진 공통점이다. 이 차이와 공통점이 발생하는 것은 각국이 자국의 경제발전의 각 단계마다 자신의 현실에 맞는 제도를 구축하고 장기간에 걸쳐 그 제도들 사이의 결합과 조화를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각국은 모두 다른 경로와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만들어왔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나름의 경제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 p.240
달리 말하면, 경제성장이 경제발전의 양적 측면이라면,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체제의 구축은 그 질적 측면이다. 그런데 기존의 선진 시장경제에서 관찰되는 바와 같이, 질적 측면의 발전은 그 결과(효율성, 지속가능성)는 유사하지만 그 형성 과정이나 내용은 나라마다 제각기 다르다. 특히 많은 경우에 이 형성 과정은 특정 국가 내에서 장기간의 역사적·정치적 모색과정을 거친다. 가령 미국의 현재 경제체제는 미국 근현대사 전체의 산물이지 특정 정부의 정책적 고안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질적 발전은 본질적으로 모방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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