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 4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자유와는 거리가 먼 세계에 있었습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자유에 목말라하며 그저 열심히 오늘을 살아내는 수많은 여성 중 하나였지요. 서른세 살에 변호사가 된 저는,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대변하고 그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찾아주는 일이야말로 저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온갖 정성과 있는 힘을 다해 눈앞에 주어진 일에 몰두했습니다. 물론 변호사로서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도 행복해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왔지요.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유와 행복은 도저히 손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은 조금이라도 구속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마치 온 세상이 나의 모든 것을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또한 그중 하나여서, 있는 힘을 다해 거기서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_[들어가며] 중에서
과거의 저는 정의감과 책임감이 옷을 걸치고 걸어 다니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기에, 사실 이러한 연습들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의리상 떠맡게 된 일이라고는 해도, 주는 일을 거절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공포였습니다. 싫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서라도 좋아할 줄 알아야 어른이라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사회인이라면 나와 관계된 모든 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득 어릴 적 일이 생각났습니다. 자신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어린 제게 강요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저에겐 참 이상하게 느껴졌었어요. 그랬던 제가 언제부턴가는 ‘그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듣지 않는 사람이 되자’라고 결심을 하고서 ‘좋은 사람’으로 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함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게 강제해왔던 수많은 규칙들의 존재를 저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_[Part 1 내 모습 그대로 마음 편히 살기 위한 연습] 중에서
《인어 공주》 이야기를 읽고 또 읽고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누군가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던지다니,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남을 위해, 무언가를 위해 주인공이 죽는 내용의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면 제 마음은 감동으로 일렁였습니다. 참으로 고귀한 삶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내가 희생할 테니 당신은 행복해지세요’ 하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는 바로 저 같은 분들! 요주의 인물입니다. 저도 딱 그랬어요. 어릴 때부터 제 눈엔 스스로를 희생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참 멋져 보였고, 언제 어느 때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나를 뒷전으로 밀쳐놓고서 곤경에 처한 사람이나 힘들어하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내 모습을 잃어버리고 나의 존재를 잊고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_[Part 2 인생은 마음먹기 나름:마음 편] 중에서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솔직하게 다 말할 수 있나요? 저는 4년 전까지만 해도 못 그랬어요. 별것 아닌 작은 일일수록 더더욱 그랬지요. 언젠가 한여름에 회의를 하는데 에어컨이 너무 세게 틀어져 있었어요. “좀 추운 것 같은데 온도를 조금만 올려주시겠어요?” 하고 말하고 싶은데, 그 한마디를 도저히 못하겠더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의 저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너 지금 도 닦니?” 네, 저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탓에 저에게 좋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더라도, 지금은 그게 더 중요하니까 참아야 한다고 억지로 그렇게 믿으려 했습니다. ‘믿으려 했다’라는 말은 ‘원하는 걸 말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그냥 체념해버렸다는 뜻입니다. 제가 아무리 그것을 납득했다고 생각해도 사실은 작은 불만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던 거지요. _[Part 3 안 하던 짓 해도 안 죽는다:행동 편] 중에서
과거의 저는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또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넌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구니?”, “넌 왜 만날 그 모양이니?” 하는 어머니의 말이나 “미코 씨는 분위기 파악을 참 못 한다니까” 하는 주변 사람들 말에 언제나 얽매여 있었고 ‘그런 말 안 듣게 조심해야지’ 하는 생각에 늘 남들 눈치만 봤거든요. 그들 눈에 비치는 나를 개선하는 데 열중하다 보니, 저는 점점 더 스스로를 억제하는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평가해보려 했지만, 제 손 안에 있는 건 ‘부모님이 원하는 기준’과 ‘세상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기준’ 뿐이었지요. 그 기준들을 통해 들여다본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글러 먹은, 완전히 별로인, 조금도 멋지지 않은, 남들 앞에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그런 인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 30명에게 “나의 장점을 세 가지씩 알려 달라”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람들의 답변 속에는 놀랍게도 저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멋진 제 모습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아닌 제 자신부터가 이미 오래전에 놓아버린 저의 좋은 점들을 주변 사람들 덕분에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제 안에 있던 타인의 기준들이 ‘나만의 기준’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_[Part 4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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