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경제 대국 일본의 젊은 여성은 빈곤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졌다. ‘젊음’ 하나만으로 충분히 시장가치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인적 자본을 유흥업소나 성매매 시장에서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 나카무라 아쓰히코(中村淳彦)는 《일본의 성매매 여성(日本の風俗?)》에서 2000년 무렵을 경계로 성매매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저출산 고령화와 가치관의 다양화(초식남 등장)로 성매매 시장이 위축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여성이 ‘몸을 파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성매매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수요가 줄고 공급이 늘어나면 당연히 시장 원리에 따라 가격이 떨어진다. 이것이 ‘섹스 디플레이션’이다. 과거에는 월 100만 엔을 버는 성매매 여성도 드물지 않았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많은 일부 여성에 국한된 이야기다. 지방 성매매 업소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나흘을 출근해도 월 수입이 20만 엔 정도로, 편의점이나 식당, 요양원에서 일하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빈곤 선상에 있는 젊은 여성에게 더욱 심각한 것은 경기 악화로 인해 성매매 업소도 신규 채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현재는 응모자 열 명 중 고작 서너 명밖에 채용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아마도)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젊은 여성이 몸을 팔려고 해도 팔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 pp.31-32, [인프라의 불균형이 빈곤을 부른다] 중에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람은 금융자본, 인적 자본, 사회 자본을 ‘운용’해 부를 얻는다. 금융자산은 (부동산을 포함해) 재산이고, 인적 자본은 일해서 돈을 버는 능력이고, 사회 자본은 가족이나 친구 같은 네트워크다. 이 세 가지 자본(자산)의 합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사람은 자신을 빈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이것들을 모두 잃은 상태가 ‘최빈곤’이다.
가난만족형의 전형은 지방에 사는 젊은이(마일드 양키)로, 수입은 빈곤 경계선 이하이고 모아놓은 돈도 없지만 친구들은 많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이들이 친구 네트워크에서 배제되면 세 가지 자본(자산)이 전혀 없는 빈곤 상태가 된다.
반대로 금융자산은 거의 없지만 고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며 친구나 연인이 있는 젊은 사람도 있다.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 모두를 가진 그들은 ‘현실충실형’이라 불린다.
이렇게 정리하면 인생에서 금융자산, 인적 자본, 사회 자본의 관계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p.39-41, [인생의 여덟 가지 패턴] 중에서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만드는 장치를 갖고 있다. 이 장치에 어떤 자극을 인풋 하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행복으로 변환돼 아웃풋 된다.
이때 행복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인은 단 두 가지다. 인풋의 양(혹은 질)과 행복을 만드는 장치의 변환 효율이다.
인풋 되는 것은 금융자산, 인적 자본, 사회 자본이다. 앞으로 찬찬히 설명하겠지만, 양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의 경우에는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나아가 인풋이 똑같더라도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과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 행복을 만드는 장치의 변환 효율은 제각기 다르고, 그 메커니즘도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일시적으로 엄청난 명성을 얻는 등 사회 자본이 지나치게 인풋 되면 오히려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풋이 ‘제로’면 행복이라는 아웃풋도 ‘제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퇴직자형이 금융자산을 가로채이거나, 인적 자본밖에 없는 솔로충실형이 직장을 잃거나, 사회 자본뿐인 가난만족형이 친구를 잃거나……. 이런 식으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불행해진 것은 행복을 만드는 장치에 인풋 할 것이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진 자본이 하나밖에 없으면 사소한 계기로 빈곤이나 고독에 빠질 위험이 크다. 이에 비해 가진 자본이 두 가지면 인생의 안정도가 크게 높아진다. 다만 세 가지 자본(자산)을 모두 가진 초충만형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돈과 공동체의 도덕이 대립하기 때문이다.
--- pp.44-46, [인생의 여덟 가지 패턴] 중에서
그렇다면 돈의 한계효용은 어떻게 체감될까? 이는 물론 사람마다 다른데, 미국에서는 연 수입 7만 5000달러, 일본에서는 연 수입 800만 엔이 넘으면 행복도가 거의 올라가지 않는다. 흥미롭게 도 미국과 일본에서 행복도가 일정해지는 금액이 거의 비슷하다.
이를 두고 행복과 돈은 무관하다고 오해하지는 말길 바란다. 오히려 돈은 행복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보여준다.
800만 엔이란 1인당 연 수입으로, 가족의 경우에는 가구(아내가 전업주부라면 남편)의 연 수입이 1500만 엔이 넘으면 돈의 한계효용이 제로에 가까워진다.
최근 들어 행복도에 대해 다양한 통계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를 보면 돈이 행복도를 낮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돈이 있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나치게 돈만 생각하면 불행해진다’는 의미다.
--- pp.59-60, [얼마를 벌어야 행복해질까] 중에서
35세를 넘어서면 인생에 대한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든다. 따라서 그 전에 자신의 인적 자본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잔혹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마흔을 넘겨 혹은 50대가 되고서 ‘샐러리맨으로서의 인생’에 의문을 가져도 더 이상 다른 선택지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란 필사적으로 회사에 매달려 무사히 정년을 맞아 퇴직금과 연금을 받기만 기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더 이상 행복한 노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회사가 도산하면 후생연금은 큰 타격을 받고, 국가 재정이 파탄 나면 연금제도 자체가 붕괴된다. 게다가 일본인의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 지금은 100세가 넘어서도 건강한 사람이 드물지 않다.
의료가 발달해 건강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60세 정년부터 40년간 인적 자본을 모조리 잃은 상태에서 오로지 연금에 의존해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20세부터 60세까지 일해서 모은 돈으로 100세까지 40년간의 생활이 보장된다는 꿈같은 이야기가 과연 가능할까?
일본 회사의 ‘종신 고용’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장기로 고용하는 강제 해고 제도다. 퇴직금이란 정년 후의 일을 포기하는 대가라고도 할 수 있다.
노후 파산이란 위협을 받게 된 뒤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다.
--- pp.136-137, [샐러리맨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당신이 아직 20대라면 반드시 35세까지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신의 전문성(좋아하는 일)을 살릴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을 찾아내야 한다. 회사에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운 좋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조직 밖으로 나가 지식이나 기술, 콘텐츠의 힘으로 큰 조직과 거래하는 ‘프리 에이전트’가 되는 것이 고도화하는 정보사회의 기본 전략일 것이다. 정년이라는 ‘강제 해고’에 의해 누구든 곧 회사에서 쫓겨날 운명이기 때문이다.
--- p.159, [온리원이면서 넘버원인 전략] 중에서
이 단순한 예로 알 수 있듯 ‘평생 현역’이라면 노후 문제 자체가 사라진다. 부부가 인적 자본을 유지할 수 있다면 수입은 더 늘어날 테고 생활은 더욱 안정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평생 맞벌이’를 뛰 어넘는 최강의 인생 설계는 없다.
건강 수명을 80세라고 해도 평생 현역이라면 20세부터 60년간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하기 싫은 일을 60년이나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좋아하는 일이 명확하다면 그때까지의 경험이 나 지식을 살려 정년 이후에 창업, ‘제2의 청춘’을 누릴 수도 있다. 설령 국가 재정이 파탄 나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인적 자본 이 낳는 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인생 100세 시대의 인생 전략은 어떻게 인적 자본을 오래 유지 하는가에 달렸다.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다.
60대, 70대가 됐을 때 인적 자본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초고령 사회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 말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잔혹한 세계에 내던 져졌다.
--- p.163, [초고령 사회에서 살아남기] 중에서
《미움받을 용기(嫌われる勇氣)》가 밀리언셀러가 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일본인은 타인(세상)에게 미움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다. 뇌과학에 의하면, 이 성격은 사회적 ·문화적 토양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환경(인간관계)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자형 에 의해 초래된다. 이는 유전적인 기반을 가진 일본인의 타고난 성 격이 항상 타자를 신경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본인은 행복해지려고 ‘관계’를 추구하고, 그 결과 (관계 지향적) 관계에 묻혀 운신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잇따른 과로사, 과로 자살을 봐도 알 수 있듯 이는 몹시 위험한 환경이기도 하다. 회사 는 싫지만 회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일본인의 서글픈 성 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로토닌 운반 유전자에 대한 최신 정보는 우 울에 취약한 줄로만 알았던 일본인이 좋은 일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즉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찾아간다면 둔감한 사람에게는 없는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p.215-216,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