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출구time exit’란 미국의 한 의사가 ‘시간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권하는 치료법입니다. 우리와 시간 사이의 관계를 재평가하고, 명상이나 기도 등을 이용해 ‘시간강박’이라는 굴레에 작은 구멍을 내는 것입니다. (…) 원재료로 요리하기, 쇼핑할 시간에 산책하기, 텔레비전 대신 신문 읽기, 섹스에 마사지를 활용하기, 그도 아니면 잠시라도 조용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 그리고 이런 작은 슬로행동이 괜찮다고 생각되면 더 큰 행동으로 옮기라고 합니다. 자신의 근무행태를 바꾸거나 보행자 친화적인 동네 만들기에 동참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선진 산업국가들을 돌며 섹스와 음식, 여가활동으로부터 일과 교육, 의료,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속도숭배 반란자’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간의 견문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느림의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 책들처럼 감동적인 미문이나 통찰력 있는 교훈으로 마음을 움직이기보다는 저널리스트답게 발로 뛰어 캐낸 생생한 정보를 통해 읽는 이의 몸을 움직이는 ‘사실의 힘’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 365p, 옮긴이의 글
도쿄 지하철의 통근자들이 섹스속도를 늦추어 얻게 되는 기쁨에 대해 읽고 있던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에서는 슬로섹스 운동이 정식으로 출범했다. 창설자는 슬로푸드의 본향 브라에서 인터넷 마케팅 컨설턴트로 일하는 알베르토 비탈레다. 그는 슬로운동 내에서 타가수정他家受精이 이루어진 교과서적 본보기로서 페트리니 원칙, 곧 ‘천천히 여유 있게 할 때 더 큰 감각적 쾌락을 얻을 수 있다’는 원리가 식탁으로부터 침실로 이식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2002년 그는 섹스를 ‘정신없고 저속한 이 세계의 위태로운 속도’에서 구원하기 위해 슬로섹스를 창설했다. 회원 수가 금방 세 자리를 넘어섰고, 남녀 비슷한 비율로 지금도 계속 늘고 있다.
하루 종일 슬로푸드 활동가들과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는 비탈레를 브라의 한 도로변 노천카페에서 만났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올빼미를 닮은 서른한 살의 남자다. 차 주문이 끝나자 그는 곧장 자기가 오랜 탕아생활을 접은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의 소비중심 문화에서는 누군가와 빨리 자고 다음 정복대상을 찾는 것이 목표입니다. 남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세요. 입만 열면 몇 여자와 잤으며, 몇 번 했고, 체위는 몇 가지나 구사했는지를 들먹이지요. 모두 숫자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완수할 목표들이 적힌 점검표를 가지고 침대에 올라갑니다. 그들은 너무나 조급하고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어서 섹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요.”
비탈레는 빠른 섹스문화에 대항하는 십자군 운동을 벌인다. 피에몬테 주 각지의 사교클럽들을 돌며 슬로섹스의 기쁨에 대해 강연한다. 자신의 웹사이트www.slow-sex.it를 슬로섹스의 모든 측면을 논의하기 위한 포럼으로 전환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속도 줄이기는 그 자신의 성생활에도 기적을 일으켰다. 비탈레는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체위를 급히 구사하지 않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전희를 더 오래 하고 상대의 귀에 속삭이며 두 눈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둘러보면 속도를 줄이려는 갈망이 커지고 있어요. 내 생각에는 속도 줄이기의 출발점으로 가장 좋은 곳은 침대입니다.”
- 224p, 8. 느린 손을 가진 연인
여러 연구는 자신이 시간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여유 있고 창의적이고 생산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한 에너지 회사는 전화 상담센터의 교대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경영 컨설턴트를 고용했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생산성이 곤두박질하고 소비자 불만이 치솟았으며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새 제도가 근무시간에 대한 직원들의 발언권을 거부하고 있어서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이 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한 회사가 직원들에게 교대시간에 대한 결정권을 넓혀주자 센터의 생산성이 즉시 높아졌다. 직원들 가운데는 직장에서 ‘시간자결권time autonomy’이 있으면 직장 안팎에서 조급증과 스트레스를 덜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도마라츠키는 그것을 로열은행에서 목격했다.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생활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나 자신의 경험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랫동안 프리랜서로 일해온 나는 1998년에 캐나다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의 런던 특파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자 즉시 내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없어졌다. 딱히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이론상으로는 연중 언제나 근무 중이었다. 편집장이 언제라도 전화할 수 있었다. 시간 대역이 다르다 보니 자연히 취재 지시가 오후에 떨어질 때가 많았는데, 그때 나는 몇 시간 뒤에 아들 녀석을 재워야 할 처지였다. 어쩔 수 없이 미친 듯이 서둘러 일을 마치거나 일이 머릿속에서 뱅뱅 도는 상태에서 닥터 수스의 책을 읽어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서글픈 노릇이었다.
당시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왜 그렇게 내 가슴을 짓누르는 맷돌로 변해버렸는지 고민해야 했다. 편집장이 속이 좁아서? 신문이 내 기사를 잘못 보도해서? 취재시간이 너무 길어서? 그러나 슬로운동을 연구하면서, 나는 언제 일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잃어버린 것이 근본적인 문제임을 확연히 깨달았다.
그렇다면 왜 근 3년이나 그 일에 매달렸는가?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와 똑같다. 경제력을 잃지 않을까, 내 경력에 손상이 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결국 나 대신 신문사가 이직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 신문사가 대량 정리해고를 발표했을 때 나도 해고자 명단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정말로 기뻤다.
- 268p, 9. 여유 있게 일하면 정말 성과가 낮아질까?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멘델스존, 브람스 등 20세기 이전의 위대한 작곡가들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그 모든 작곡가의 작품을 너무 빠르게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류의 견해는 아니다. 음악계의 대다수는 템포 기우스토라는 단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으며, 들어보았더라도 이 운동을 비웃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너무 빠른 속도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에 동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일부 음악을 전보다 빠르게 연주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리스트는 1876년 10월 26일에 쓴 편지에서 자기가 베토벤의 106번 하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거의 1시간presque une heure’이 걸렸다고 했다. 그로부터 50년 뒤, 아르투르 슈나벨Arthur Schnabel은 단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늘날 일부 피아니스트들은 이 작품을 30분 만에 해치운다.
초기 작곡가들은 연주자들이 조급증이라는 병원균에 감염되었다고 비판했다. 모차르트도 연주속도에 강한 불만을 표한 바 있다. 1778년,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연주가 아베 포글러Abbe Vogler가 어느 야회에서 자신의 소나타 C장조 KV330을 함부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 급히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연주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상황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너무 빠르다’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기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탄식했다.
“연주의 대가들에게 저주가 떨어졌다. 그들의 능란한 손가락들은 늘 감정을 따라 급해지고, 심지어 정신을 따라서도 급해진다.”
- 299p, 당신에게 알맞은 속도로 살아라
하버드대학교 학부 학장 해리 루이스Harry Lewis는 학생들의 고충을 듣는 모임에 참석했다. 한 학생이 불만을 토로했다. 자신의 교과 상담자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자기는 생물학과 영어학을 복수전공하면서 4년이 아니라 3년 안에 과정을 다 마치고 싶은데, 교과 상담자가 필요한 모든 과목을 이수할 수 있게 시간표를 조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제지당하고 있다는 학생의 불평을 듣는 순간, 루이스는 머릿속 전구에 불이 반짝하고 켜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잠깐만, 자네에게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도움이네.’ 하고 말했지요. 우리는 되도록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채워 넣으려 기를 쓰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루이스는 21세기의 학생이 어떻게 조급한 문화의 신봉자가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학장은 지나치게 채워 넣은 시간표와 가속화된 학위 프로그램이라는 병소病巢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하버드의 모든 1학년 학생에게 공개서한을 썼다. 캠퍼스 안팎의 생활태도를 전혀 새롭게 바꿀 것을 호소하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그 서한은 슬로철학의 핵심원리를 명료하게 요약하고 있었다. 매년 하버드 신입생에게 보내고 있는 그 편지의 제목은 ‘속도를 늦추세요Slow Down’다.
일곱 장에 걸친 편지에서 루이스는 대학은 물론 인생에서도 너무 많은 것을 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학생들에게 학위를 서둘러 끝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것을 촉구한다. 한 과목에 정통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류 의학과, 법학과, 경영학과 대학원들이 갈수록 ‘학부 교육을 속성으로 마친’ 지원자보다는 풍부한 교양과 성숙한 인격을 갖춘 지원자를 더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루이스는 너무 많은 과외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는 묻는다. 하버드에서의 대학생활을 빡빡한 일정에 쫓겨 온통 정신없이 보낸다면 라크로스 경기를 하고, 토론의 사회를 보고, 회의를 조직하고, 연극에 출연하고, 대학신문을 편집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활동을 줄여 한 가지라도 최대한으로 몰두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편이 훨씬 낫다.
- 318p, 11. 불안한 당신을 위한 가장 근사한 처방
미국의 내과의사 래리 도시Larry Dossey는 ‘시간병time-sickness’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달아나고 있다는,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그리고 계속 나아가려면 가속 페달을 더욱 세게 밟아야 한다는 강박적 믿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이 병을 앓고 있다. 우리는 모두 속도숭배의 신도들이다. 나는 런던으로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선 채로 이 책의 핵심문제들과 씨름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왜 늘 그렇게 급한가? 시간병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속도 늦추기라는 게 가능한가? 아니, 그게 바람직하기는 한가?
(...) 인생에는 속도를 높일 수도 없고 높여서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천천히 해야 한다. 빠르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빠르게 하면서 어떻게 속도를 늦출지를 잊었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 런던의 한 라이프 코치는 이렇게 말한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좌절감을 수반하는 정서적·신체적 탈진감과 같은 과잉 스트레스 반응의 한 가지? 옮긴이)은 주로 40대 이상에서 볼 수 있는 증상이었습니다. 지금은 30대, 심지어 20대 중에도 완전히 소진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적당해야 건전할 수 있는 근면윤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적당한 휴식까지 마다하는 ‘휴가기피증’의 확산을 생각해보라. 영국 노동자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보장된 휴가를 다 쓰지 않겠다고 답한 사람이 60퍼센트에 달했다. 평균적으로 미국인들은 보장된 유급휴가 중 5분의 1을 쓰지 못한다. 이제는 질병조차 현대의 직장인이 사무실에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미국의 경우 집에서 침대에 누워 있거나 병원에 가야 하는데도 일터에 나가는 사람이 다섯에 한 명꼴이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슬로운동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 운동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발전하고 있으며,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고, 왜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책은 속도 중독자인 나 자신의 사적인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 책이 마무리될 때쯤엔, 10대 시절 내가 로마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느꼈던 평온함을 조금이나마 되찾으면 좋겠다. 아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도 시계를 보지 않고 정성껏 읽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대다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패스트와 슬로 사이에서 균형을 찾음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 17p, 격분의 시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