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한 첨단기술 회사의 CEO는 모든 직원이 참가하는 주말 캠프를 열어 왜 직원들이 자사보다 스톡옵션 정책이 약한 경쟁사로 떠나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경직된 분위기였지만 이내 직원들은 차례로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식 보너스를 후하게 주는 일은 고맙지만 자신들의 의견은 무시된 채 모든 결정이 상사의 생각으로만 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스톡옵션을 받으면 제가 회사의 주인이 된 것처럼 느껴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하다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여전히 노동자일 뿐이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려는 겁니다."
처음에 CEO는 리더로서 지휘를 담당해야 한다는 신념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가
오고감에 따라 그는 서서히 자세를 바꾸기 시작했다. 대화의 장에 점점 활기가 더해지자 많은 젊은 기술자들이 자사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고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 p.14
몇 년 전, 나는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한 곳에서 그 대학의 미래 계획과 전략에 관한 연구를 한적이 있다. 교수진과 졸업생, 대학 경영자들 대부분은 모두 그 대학을 미국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총장에게 한없는 경탄을 표했다. 그러나 그 대학의 학장들을 인터뷰하자 한 가지 불만스러운 의견이 나왔다. 그들은 그 대학이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다는 점을 비판했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총장에게 정말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무 말 없이 책상 앞으로 가서 종이 한 묶음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총장에 관한 신문기사와 연설문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감동적이고도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놓고 있었다. 나는 그 글들을 읽고 감탄을 금치 못 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에 비전이 없다고 걱정을 늘어놓던 학장들에게 가서 그들이 총장이 내놓은 비전에 동의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원하는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한결같이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다가 한 명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맞아요! 이제 기억이 나는군요. 그 동안 왜 그 기사들을 기억하지 못했을까요?" 학장들은 총장의 가까운 동료로서 대학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총장과 함께 대학의 비전에 관해 대화하지 못했고, 그저 총장이 쓴 기사들을 통해 미래의 비전을 접해야 했던 것이다. --- p.24~25
사실 모든 형태의 이야기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작된다. 그리고 각각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능력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다양하게 조직된 후 그 형식을 갖추어왔다. 그러나 대화는 아직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대부분 네 개의 D, 즉 대화(Dialogue), 논쟁(Debate), 토론(Discussion), 토의(Deliberation)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이런 습관 때문에 대화를 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느낀다. 사실 대화는 하는데 필요한 기술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대화의 기술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혼동 때문이다. 대화의 기술을 터득하기 전에 이런 것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야 한다. --- p.41
대화와 결정을 내리는 일을 구분해서 생각하라. 결정을 내리는 것이 대화의 유일한 목적이라
해도 결정을 내리기 전에 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둘 사이의 경계선은 공식적일 수도 비공식적일 수도 있다. 또한 명확할 수도 모호할 수도 있으며 그 사이의 시간이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둘이 서로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서로 상당히 깊게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때 대화가 필요 없는 경우도 많다. 정말 힘든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문제에 관련해 압력을 받거나 이해관계의 대립이 일어나기도 하므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 p.65
마틴 부버는 다른 사람과 관련한 두 가지 방식, '나와 그것'과 '나와 너'를 구분하는 간단한 방법을 발견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상대방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에게 스스로를 내보이는 직접적이면서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나와 그것'의 관계는 거리를 둔 관계로서 인간적인 감정 없이 더 형식적이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서로간의 거리는 사라진다. 즉, 이 관계는 지위나 사회 규범, 자의식, 우월감, 무관심, 냉담함, 자기방어, 좋은 매너 등을 기준으로 구분되지 않는 관계다. 한 인격체로서 다른 사람과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거리를 두지 않고 상대방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 p.175~176
상명하달식 명령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른 형태를 취한다. 그 중 하나의 형태는 CEO들이 쓰는 방식이다. "여러분은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직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회사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지요. 우리는 여러분에게 회사 정책과 실천 방안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각이 도움이 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수없이 다양한 형태의 상명하달 방식이 있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언제나 리더나 전문가의 일이며, 메시지를 전달받는 대상은 이를 이해하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또한 메시지의 내용에는 전달받는 사람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가정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상명하달 방식의 명령은 우리의 의사소통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리더와 대중들 사이를 갈라놓는 주범이다. --- p.183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7년 특별위원회를 설립해 인종에 대한 국가적 대화를 계획했을 때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참여시킨 사실이 드러나자 심한 비난이 일었다. 그는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전혀 모임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때문에 위원회의 초기 모임은 진정한 대화라기보다 단지 마음을 바꾸라는 설교 형태일 뿐이었다. 비난을 받은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유명한 소수민족 우대정책의 반대자들을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그 대화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며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이 대화에서 소수민족 우대정책의 반대파들은 상대 측이 자신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주의 깊게 경청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상대편의 견해를 일시적으로 꺾어버리기보다는 그들의 훌륭한 신념을 인정하자 양측에 감돌던 불신은 안개처럼 걷혔다.
---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