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모든 잡념을 밀어내고 완전한 침묵을 찾아야 해. 그래야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되고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인 영혼에 닿을 수 있지.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을 만든 조물주에게 다가가는 일이야. 하지만 네가 두려워하거나 이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단다. 우리 안에 있는 침묵은 그런 것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한 방법이지. 그렇게 하면 너도 네 인생에 관해 최대한 이해할 수 있게 된단다. 죽음은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실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지. 어둠은 나쁜 것을 숨겨두는 공간이지만 그것이 너를 성장시키기도 하거든. 침묵은 생각과 소망을 표출할 수 있는 곳이자 기도할 수 있는 곳이란다. 생각과 소망과 기도는 침묵을 강화해주지. 바람이 불지 않는 날 활을 쏘는 것처럼. 바람이 화살을 벗어나게 할 수는 없어. 또한 네 침묵은 과녁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지. 하지만 네가 기억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단다. 내면의 침묵은 삶의 실체에서 도망쳐 숨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과 네 진실한 자아와 마주하는 곳이라는 점이지. 이 점만 기억한다면 어느 정도 지식이 주어졌으니 네 정신력은 한층 더 강해질 거야.” (23p_1장 [침묵이 가져다준 선물]에서)
조부모님 두 분은 마음속 가장 안쪽에 있는 침묵의 공간을 힘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곳에 도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스스로를 진실하게 마주하고 살피기 위해서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라코타 전통문화에서 가장 단순한 기도문은 ‘미타쿠에 오야신’, 즉 “주위의 모든 것들이여”다. 이 짧지만 완전한 기도를 통해 우리는 대지를 포함해 대지 위에 있는 모든 것들과의 교감을 일깨운다. (43p_1장 [침묵이 가져다준 선물]에서)
인생의 쓴맛을 본 사람들 중 일부는 순수함이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현실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게 제약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약과 편견이 없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순수함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순수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힘으로 세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관용이다. 관용을 위해 순수해질 필요는 없다. 단순히 순수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기만 해도 충분하다. (75p_2장 [함께해야 배울 수 있는 것들]에서)
신념을 가지는 것은 희망의 초석을 두는 것이다. 상황을 바꾸거나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대부분 그에 굴복한다. 하지만 일부는 그런 힘든 시간 속에서도 일종의 구원이나 해결책이 어둠이나 불확실함과 고통의 종말을 알리며 한 줄기 빛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나는 그런 희망의 씨앗이 생존을 위한 인간의 기초적 본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신념은 그 같은 본능을 움직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붙들고 있을 수 있도록 해준다. 선이 악을 이기고 옳은 것이 그른 것을 압도할 것이라는 영원한 희망은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신념인 것이다. (101p_3장 [스스로를 믿는 힘]에서)
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회도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질을 다 채워주지는 못한다.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필요한 것들도 마찬가지다. 미리 준비하는 라코타 사회는 그 사실을 알고 이해했다.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음식 한 덩어리, 물 한 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귀, 또는 우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어깨처럼 단순한 것들이다. 내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은 이타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들의 이타심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필요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나 돈, 이해심, 조언과 같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이타심에 관한 교훈이었다. (125~126p_4장 [태양을 보고 춤추는 이유]에서)
“당신이 시간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어요. 우리의 삶을 참고하고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진 시간을 참고하는 것이지요. 내 70년을 돌이켜보니 확실히 모든 것이 빠르게 일어난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지요. 사실 너무 빨리 일어났어요. 손자들이 태어났고 어느덧 그들이 대여섯 살이 되어 있더군요. 몇 년 전에 내가 이미 인생의 대부분을 지나왔다는 사실이 엄습했습니다. 내 시간이 거의 다 끝났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하루와 계절, 해는 언제나처럼 찾아오고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즐거운 순간을 즐기고 어려운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견뎌내는 것은 모두 내게 달린 거더라고요.” (155p_5장 [내가 정하는 삶의 속도]에서)
요즘과 같은 시대에 지식을 추구하려면 정규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배운 것을 확인하고 반박하며 변경하거나 지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이 그 자체로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는 점이다. 인생은 몇 가지만을 선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와 더불어 어떻게 살면 안 되는지도 알려준다. 어떤 일을 하는 방법과 해서는 안 되는 법도 말해준다. 내 조부모님은 삶을 살아가는 데 대해서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조용히 보고 듣고 배워라.” (211p_6장 [당신은 어떤 여행자인가]에서)
“도와주세요! 저는 한심해요! 도와주세요!”
그는 작은 나무를 향해 기어가 등을 기대고 앉았다. 해가 지고 그림자가 길어지더니 또다시 길고 차가운 밤이 그를 찾아왔다. 덤불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큰 슬픔은 버릴 곳이 없다네.”
나이 든 목소리가 말했다.
돌화살은 충격을 받고 두려워졌다. 그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저 꺽꺽거리는 곡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요.”
돌화살은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어 긴 백발의 깡마른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는 짧은 창에 기대서 있었다.
“안다니 다행이군.”
노인이 대답했다.
돌화살은 눈물을 닦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낯선 사람이었다.
“어르신, 저는 이해가 안 돼요.”
그가 말했다.
“길을 잃었을 때 다시 길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것뿐이라네.” (226~227p_7장 [평화, 가장 위대한 승리]에서)
토마스 에디슨이 전구를, 중국에서 나침반, 시계, 화약을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발명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열정, 관용, 너그러움, 명예, 존중, 겸손은 누가 만들었는지 알고 있는가? 인간의 이런 가치들은 한 사람이나 집단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잔인함, 제국주의,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방어책으로 출현했다. 그리고 이것은 억지로 조성하거나 키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 본연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가치는 삶이 주는 고난과 시련에 맞서고 극복하는 데 무용지물인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또 다른 현실은 일부 또는 다수의 고난과 역경이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에 이른 과정을 잊어버리면 스스로가 최악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명한 사람은 어둠을 밝혀주는 인간의 기억을 좋아했다. 그 빛이 밝혀주는 곳은 볼 수 있지만 빛이 지나고 나면 한때 환했던 곳은 다시 어둠이 되고 잊힌다. (264~265p_8장 [오래된 지혜에서 배우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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