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아래에는 더욱 많은 꽃들이 떨어져 있었다. 가장자리 한쪽이 누렇게 빛이 바래기 시작한 꽃도 있었다. 한참을 이 꽃 저 꽃을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툭’ 소리가 들렸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숲속의 새와 나밖에 없는 것 같은 새벽에 그 소리는 아주 크게 들렸다. 몸이 움찔했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돌아보니 바로 옆에 새로운 꽃이 하나 피어 있었다. 동백은 나무에도 피고 땅바닥에서도 피었다. ---「땅에 핀 동백꽃」중에서
병꽃나무의 입장에서는 꽃이 붉게 변하는 때부터 더욱 바빠진다. 열심히 열매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를 위해 화사한 꽃을 피우고 매혹적인 향기를 내뿜고 달콤한 꿀을 만들어냈다. 누군가는 그런 모습들을 다 지켜보며 배고픔도 잊은 채 한나절을 서 있다. 그런 와중에 병꽃나무는 또다른 황금기를 위해 소리 없이 달려가고 있다. 병꽃나무와 꿀벌과 어리호박벌은 상대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뿐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중에서
결국은 사람도 꽃으로 필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 모를 뿐이다. 붉은 꽃으로 필지 흰 꽃으로 필지 알 수 없을 뿐이다. 그때를 위해서 초조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자세를 바로 하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요즘도 가끔 혼자 중얼거리듯이 되뇐다. “꽃은 꼭 봄에만 피는 건 아냐. 봄이 지나도 꽃 필 수 있는 계절은 길게 남아 있어.” ---「사람도 꽃으로 필 거야」중에서
우리들의 호기심으로, 보이지 말았어야 할 관심으로 인하여 그들의 생에 치명적인 위해를 가한 꼴이 되었다. 그때야 알았다. 사람의 손길이, 사람의 체온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그때부터 곤충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내가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라 저들이 나를 무서워할 것이 무서워 만지지 못하게 되었다. 이미 성충이 된, 그동안 잘 잡던 나비와 잠자리도 못 만지게 되었다. ---「잠자리 날개를 손으로 만지지 마세요」중에서
무궁화가 어떻게 우리들의 마당에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후에 일어난 일련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자 친구는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자기는 전혀 기억도 못하는 일을 어떻게 지금까지 자세히 기억하고 있냐면서.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거든. 자꾸 생각하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좋은 일은 자꾸자꾸 생각해.” ---「누구에게나 있는 무궁화 한 그루」중에서
숲에 애벌레가 많이 발생하는 5월이나 6월에는 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의 배낭이나 모자나 옷자락에 붙는 수가 생긴다. 그럴 때는 사람의 손으로 뗄 수 없다. 설사 애벌레를 잘 만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손으로 떼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 달라붙는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떼려 해도 그들은 위협을 느끼고 더 강하게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에 붙어 있으려 한다. 그럴 때는 나뭇잎을 이용하면 쉽게 뗄 수 있다. 나뭇잎 한 장을 애벌레가 기어가는 방향 앞에다 놓으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기어 잎 위로 올라간다. 그런 뒤 그 잎을 숲에다 돌려주면 된다. ---「나비 애벌레를 이사시키고」중에서
나에게는 원칙이 있다. 숲속에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의도를 갖거나 숨겨진 속셈을 품고 그들을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누군가를 살리려는 의도나 누군가를 죽이려는 속셈을 숨긴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려 애쓴다. 다만 ‘내가 궁금해서, 내가 보고 싶어서, 내가 알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들을 따거나 주울 때는 있다. 나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내 눈에 띈 것도 그들의 운명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러나 그럴 때는 일차원적인 호기심이 가득할 뿐 의도나 속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