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명작에 숨겨진 작곡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2015년 봄, 일본 오사카 서점을 배회하다 제목만으로 이 책이 눈에 띠었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 한국에 돌아와 바로 이 책을 출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지난겨울, 번역가로부터 원고를 받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페라도 보고 싶어졌습니다. 비제의 [카르멘]을 유튜브를 통해 보았고, 그 서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 음악이었구나. 경쾌한 행진곡풍의 음악, 멜로디를 알면서도 이 곡이 [카르멘]에 나오는 서곡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카르멘이 부르는 아리아 등 귀에 익은 음악들이 펼쳐지며 비제가 떠올랐습니다. 초연 당시 혹평을 받고, 그 좌절감으로 힘겹게 아픈 몸을 이끌고 파리를 떠나야 했던 비제는 자신의 오페라가 140년이 지난 지금도 공연되고 있다는 것을 알 리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베버의 삶을 보면서, 정말이지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건강까지 해쳐가면서 영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나야 했던 베버는 우리 시대 가장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벨리니는 낯선 작곡가였습니다. 하지만, 벨리니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로시니와 벨리니의 질투에 대상이 되었던 도니제티 등 같은 음악계에서 펼쳐지는 경쟁과 배신은 당대의 이야기로만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그너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던 바그너가 미나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스토커처럼 그녀를 쫓아다녔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프랑스로 도망가는 과정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오페라의 탄생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바그너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라고도 할 만큼 독일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입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시니는 참 부러운 작곡가였습니다. 당대 내로라하는 베토벤보다 더 인기 있는 작곡가로 명성이 높았던 로시니는 음악계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가장 평온한 삶을 살았던 작곡가였습니다. 로시니의 이야기는 그의 음악만큼이나 경쾌하고 발랄했습니다.
다음으로 이어진 베르디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춘희》를 원작으로 만든 [라 트라비아타]의 작곡가입니다. 베르디는 장인 바레치를 만나지 못했다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부로 살았을 것입니다. 바레치의 후원으로 작곡가가 되었고, 바레치의 딸과 결혼까지 합니다. 그러나 결혼 몇 년 만에 아내와 딸을 모두 잃고, 홀로 지내게 된 베르디에게 오페라 가수 출신의 스트레포니는 큰 위안됩니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고향 사람들의 편견과 질시를 베르디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지켜냅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여자를 지키고 80세까지 해로한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를 통해 자신과 스트레포니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 이야기는 내내 슬펐습니다. 스탕달은 모차르트를 “이전에는 이탈리아인들에게 ‘모차르트’라고 불렸으며, 지금은 ‘괴물 같은 천재’라 불리는 그는,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은 갖지 못했다.”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아내마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아 모차르트 무덤이 어디 있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그의 말년은 너무 슬펐습니다. 이 책에서는 모차르트가 생의 마지막을 살았던 빈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끝으로, [나비 부인]의 푸치니는 아내 엘비라의 질투로 하녀 도리아와의 스캔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결국 도리아는 자살하게 됩니다. 진실 게임에서 진실은 묻히고 푸치니는 이후 7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명작의 탄생에는 수많은 비화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비화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은 명작을 이해하는 힘이 되곤 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추천하고픈 책입니다. 오페라 명작을 남긴 천재 작곡가들의 치명적인 사랑과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오페라를 이해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오페라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무대는 아닙니다. 그 이유가 클래식은 어렵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편견을 없애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자의 프롤로그
클래식 애호가 가운데서도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소수다. 내 친구들도 오페라를 ‘과장된 장르’라고 말한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페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꽉 찬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있고, 출연자들의 다양한 노래가 있으며, 화려한 의상과 복잡한 드라마까지 있다. 구성 요소들이 전부 맞물려 있어서 음악에 취하려고 하면 연극이 방해가 되고, 드라마를 즐기려고 하면 노래가 방해를 한다.
혹자는 한 가지만 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토로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모든 것들이 오페라에 잘 녹아들었을 때, ‘눈’으로 들으며 ‘귀’로 보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렇게까지 격정적이 고 기술이 필요한 예술 형식을 선호하는 것일까? 작곡가 본인이 자신의 몸속에 있는 격렬한 감정을 끌어안은 채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사실 명작 오페라가 탄생하는 과정에는 영화처럼 극적인 사건들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오페라의 뒷이야기라고 부를 만한(단 주인공은 작곡가 본인) 일들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추문이라고도 불리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작곡가 본인의 치열한 전쟁이었다.
그렇다. 오페라 작곡가들은 각자 장렬한 전쟁을 치르며 걸작을 만들어냈다. 창작의 괴로움보다도 인생을 살아가며 겪는 괴로움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예술가도 1년 365일 예술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으며, 언뜻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그들의 사생활이야말로 인생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싸움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오페라 작곡가들이 대단한 이유는 일상의 틀에 갇혀 지내면서도 천재성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틀을 벗어나거나 부수거나 넓히며 각자의 개성을 빛냈다. 그들의 오페라는 전쟁같은 창작의 시간 속에서 귀하게 얻은 작품들인 것이다.
예를 들면 〈마탄의 사수〉를 작곡했던 베버는 과로사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의 샐러리맨 그 자체다. 그가 작곡에 전념한 시간은 병상에 있었던 시간과, 일상의 시간을 제외하면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신이 나에게 뛰어난 재능을 내려주셨으니 그 임무를 완수하도록 노력하자.”라고 맹세한 베버였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내린 결론은 아내와 아이에게 재산을 남기기 위해 지금까지 했던 것 이상으로 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너무나 과로한 나머지 세상을 떴다.
물론 이런 배경을 모른다고 해도 〈마탄의 사수〉를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배경을 잘 알고 있다면 오페라 여주인공의 형언할 수 없는 상냥함과 따뜻함이 남자 주인공뿐 아니라 베버 역시 구원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주인공 아가테는 베버의 아내인 카롤리네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조금 촌스럽다고 여겨지던 이 오페라의 예상치 못한 섬세함 또한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어린 모차르트를 유럽 전역에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당시의 마차 여행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것은 거친 바다를 보트 하나로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만큼 힘든 일이었다.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사고나 강도와 맞닥뜨릴 것을 걱정해야 했으며 요절할 위험 또한 높았다. 모차르트는 그런 생활을 장기간 계속하면서 누구보다 밝은 음악을 만들었던 것이다.
첫 번째 아내였던 미나 플라너에게 이상할 정도로 집착을 보였던 바그너, 병적일 정도로 계속해서 바람을 피웠던 푸치니, 질투에 눈이 먼 벨리니. 그들의 에너지는 마치 그들의 오페라처럼 격렬했다.
우등생이었던 비제가 〈카르멘〉에서 처음으로 격정적인 오페라를 선보였을 때 그는 굉장한 비난의 대상이 되어 무너지고 말았다. 비제 본인은 무너졌지만 〈카르멘〉은 1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카르멘〉뿐 아니라 〈라 트라비아타〉, 〈세비야의 이발사〉, 〈나비 부인〉 모두가 초연 당시에는 지독한 혹평을 받았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옛날이든 지금이든 축복받은 존재는 아니다. 사람이 죽어서 작품을 남기면 그걸로 충분할지도모른다. 그리고 그 때문에 걸작이 태어나는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도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아는 것은 도움이 안 되고 오페라를 즐기는 데 썩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작품만 감상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샛길을 통해 오페라에 입문해도 괜찮지 않을까?
게다가 오페라는 원래 격정적이기 때문에 작곡가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나카노 교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