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DSLR 카메라와 플래시의 매뉴얼 북이 아니다.
믿어도 좋다. 설사 내가 매뉴얼을 쓴다 해도 모두들 내가 쓴 매뉴얼 같은 건 읽고 싶어하지 않으리라. 참을성이 좋아 나와 살아가는 내 아내는 내가 걷고 말하고 살아가고 숨쉬는 모든 행동이 '산만하다'고 평가한다.
산만하다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말하면, "정해진 순서 없이 이 주제 저 주제를 옮겨 다닌다", 혹은 "어수선해 질서나 통일성이 없다"고 정의할 수 있다.
아이쿠. 좋다. 결론적으로 나는 매뉴얼을 쓸 수 있는 위인이 못 된다.
그럼 매뉴얼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구성력이 뛰어나고 간결한 표현을 할 수 있고 명쾌하고 꼼꼼하면서도 분석적인 사람이 아닐까. 매뉴얼을 쓰는 사람들은 일관되고 정밀하게 사고를 한다. 도표 역시 끝내주게 잘 그릴 것이다. 또한 기술적인 내용에도 정통할 테고 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직업이 사진가인 경우는 드물다.
매뉴얼이란 책 한 권에 카메라의 기술 요소를 모두 다루면서, 각 요소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자 애쓴 노력의 결정체다.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관점이기도 하다. 새로 산 카메라 포장박스에 매뉴얼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그 작은 제품 설명서는 카메라의 바이블이며, 각종 정보로 가득하다. 이 책에는 보물 지도마냥 알 수 없는 온갖 전문 용어들과 차트와 그래프와 도표들이 가득하다.
난 그저 대부분 사람들이 매뉴얼을 절대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일 뿐이다.
매뉴얼 보지 않는 습관을 나무라는 게 아니다. 나 또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제부터 이 책에 이어지는 내용은 매뉴얼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매뉴얼이란 객관적이고 정형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난 30여 년간 사진가로 일해왔으며, 때문에 몇 가지 확실한 사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내가 긴 시간에 걸쳐 얻어낸 사실은 사진 작업에 있어 확실하다고 할만한 것은 얼마 되지 않으며, 심지어 절대적인 것조차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조명은 특히 더 그렇다. 빛은 변덕쟁이며, 그걸 다루는 건 일종의 마법과 같은 일이다. 처음엔 이곳에 있었다가 어느 순간 저기에 있기도 하고, 그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색과 컨트라스트가 살아 있는 장면을 포착하고 이를 촬영하려고 마음 먹는다. 가방을 풀고 렌즈를 고른 다음 다시 그 장면을 바라보면, 내가 찍으려고 마음 먹었던 장면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사이 구름이 해를 덮어, 단조롭고 칙칙한 장면이 되어버리고 마는 식이다.
젠장. 하지만 이러한 문제 상황은 소형 플래시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배터리로 동작하는 이 작은 조명 장치가, 아마 카메라 가방 어딘가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머니엔 이렇게 써 있을지 모른다. "위급 시에만 사용하시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플래시는 어떤 광원이나 조명보다도 미스테리한 물건이다. 플래시는 번개처럼 빠르며, 다루기도 어렵고, 매번 깜짝 놀래키기도 하고, 사용하다가 좌절하게도 만든다. 아마 그렇게 난처한 처지에 빠질 때마다 플래시 활용의 어려움을 저주하면서, 이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우리는 절대 매뉴얼을 읽지 않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자). 어설프게 버튼을 눌러봤다가, 스위치를 켜고 끄기도 하고, 화이트 밸런스를 조작해 보고, 광량을 조절해 보고 하다 보면, 어느새 플래시는 펑 터지고 방 안에 빛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 플래시 빛은 천장이나 거울 등에 반사돼 피사체를 여러 방향에서 비추고, 그 피사체는 운 좋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촬영된다.
자, 한 번은 성공했는데, 그럼 어떻게 다시 할 수 있을까? 플래시를 쥐고 고함을 질러보자. "또 한 번 해봐!" 물론 대답은 없다. 플래시는 그 신비한 비밀을 꽁꽁 숨겨두고 있다.
이 책은 객관성이나 확실성에 대한 책이 아니다. 매뉴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저 사진과 플래시에 관한 내 기록을 담은 다이어리일 뿐이다. 새로운 도전, 불운한 사건, 좋았던 성공담 등을 모두 가감 없이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조명을 잘못 바운스한 사례, 나쁜 노출값, 잘못 이해했던 개념 등을 깨우친 노하우 등이 담겨 있다. 물론 나라고 이런 내용을 처음부터 유전자에 새기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마치 미식축구 볼을 200야드 던질 수 있거나 키가 2미터 이상 크는 것 등과는 다른 문제라는 말이다(나는 뉴욕 닉스 팀에서 센터를 맡아 보는 일이 정말 간절한 소원이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내가 무엇을 해봤는지에 관한 책이다. 책의 첫 번째 절은 '장비 선택과 활용법'이라는 제목이다. 바로 내가 촬영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고민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나나 다른 사진가들이 매번 직면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든 문제'라고 한 표현은 정말 문자 그대로다. 플래시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면 조명을 이야기하게 된다. 또 조명에 대한 이야기는 노출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조리개 수치라든지, 셔터스피드, 노출값 등을 자연스레 이야기하게 된다. 또 이 말은 플래시와 현장의 조명이 서로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서도 언급한다는 뜻이다. 플래시를 사용하되 마치 닌자처럼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써보려 한 적이 있는가? 혹은 현장의 조명에 의한 효과는 최대한 없애고 플래시 빛이 피사체를 지배하도록 애쓴 적이 있는가?
플래시에 대해 말하려면, 빛의 색에 대해서도 역시 언급해야 한다. 즉 화이트 밸런스나 젤라틴 사용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서로 다른 색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까지도 이해해야 하거니와, 빛의 방향이나 퀄리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 이야기는 곧 라이트 셰이핑 도구에 대한 설명도 담겨있다는 뜻이다.
플래시는 카메라에 장착하기도 하지만, 케이블이나 무선을 통해 카메라와 떨어뜨려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플래시가 카메라와 떨어져 있을 때, 이 둘 간에 어떻게 통신을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카메라와 플래시에는 다양한 버튼과 다이얼 등이 달려있다. 다이얼을 돌리고 버튼을 눌러보면 뭔가 숫자가 늘어났다 줄었다를 반복하며 바뀐다. 알 수 없는 각종 코드와 약어, 기호 등이 나타나는 것도 볼 수 있다. 뭔가 난해한 수학 같아 보일 테지만 제대로 이용하고 사용한다면 시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시각적인 시인 셈이다. 사진에 빛의 느낌을 담는 일이지, 숫자를 담는 것은 아니니까. 플래시를 +1.3으로 설정하고 카메라의 노출보정을 -2EV로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보고 있으면 아찔해지는 사진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멋진 사진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해 본 적이 있는가? 엄청난 크기로 인화하고 싶어진 적 있는가? 난해하고 진저리 나는 숫자들이 결국 그런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책에는 지금까지 말한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다. 숫자는 그냥 생략하거나, 꼭 필요한 수치들만 계산하자. 뉴튼 역학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이해하자. 플래시는 단호하고 예측 가능하게, 그리고 매너 있게 다뤄야 한다(때로 300킬로그램에 가까운 흉포한 고릴라가 어두운 곳에 앉아 있을 수 있다. 이 친구는 사진가들에 내재된 도전 정신을 몹시 자극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8킬로그램이 넘는 내 아내의 고양이 나이젤에게도 그렇게 대하자. 끊임없이 움직이고 위치를 바꿔가며 그때의 느낌을 몸의 근육이 기억하게 하자. 마치 숨쉬기나 말하기, 능숙한 손재주나 춤인 양 그렇게 직관과 본능에 의해서 행동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에서 핵심 내용을 반복해 다룰 생각이다. 주제마다 조명에 대해 이야기할 타이밍이면, 매번 동일한 이슈를 다시 언급한다는 말이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어쨌든 핵심 내용에 대한 언급은 항상 모든 이야기에 담겨 있다. 그렇게 반복되는 내용은 빛의 퀄리티나 색깔, 방향, 노출, 조리개, 셔터스피드, 카메라 모드, 화이트 밸런스, 디퓨저, 스탠드, 클램프, 핫슈, 콜드 슈 등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 말한 요소를 자주 반복하는 일은, 실제 촬영에서 나 자신이 늘상 반복해 체크하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주요 요소들은 내가 그저 책에 적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촬영을 나가거나 의뢰를 받았을 경우에도 스스로 늘 되새기고는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런 요소를 잊지 않고 항상 고려하는 습관이 본능처럼 사진가의 두뇌에 박혀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조명에 관한 표현이나 반복해서 등장하는 용어들은 실제 촬영 시에는 매번 다른 조합으로 쓰인다. ---저자 서문 중에서
조 맥널리는 소형 플래시를 대단히 능수능란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다루는 사진가입니다. 그런 그가 『사진, 순간 포착의 비밀』에 이어, 소형 플래시의 다양한 활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집중해 집필한 책이 바로 이 책 『사진, 플래시의 마법』입니다. 하지만 플래시 활용법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이 책을 단순한 기술서로 분류하기는 곤란할 듯합니다.
이 책의 구성은 저자의 전작 『사진, 순간 포착의 비밀』과 유사합니다. 자신이 소형 플래시를 사용해 직접 촬영한 사진을 일단 예시로 보여준 다음, 순차적으로 먼저 사진을 구상해보고, 장면과 빛을 분석하고, 플래시와 카메라 설정, 조명 기구 사용을 설계해 촬영한 후 그 결과에 대한 분석을 마칠 때까지의 모든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실제 촬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이를 통해 사진 촬영의 테크닉뿐 아니라, 조 맥널리의 사진에 대한 관점이나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까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쳀 단순히 플래시의 활용법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특히 일대일로 사진 기술을 전수받을 기회를 잡기 어려운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는 이러한 친절한 전달 방법으로 매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담은 또 하나의 미덕은 현재성에 있습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책에 실린 사진들의 상당수가 발매된 지 오래지 않은 니콘 플래시 SB-900을 사용했습니다. 사진 표현에도 트렌드가 있고 흐름이 있습니다. 물론 사진에는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인 가치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표현하는 테크닉 측면에선 시대와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디지털 사진의 시대는 기술 발전이 매우 빠르게 이뤄지는 상황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사진가의 최신 사진을 분석하며, 그 촬영 노하우를 전수받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책을 받고 나서 알고 지내는 사진 작가 분께 의견을 구할 때에도, 수준 높으면서도 현재성을 담은 사진들에 대해 좋은 평가를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읽으신 모든 독자분이 저자 조 맥널리의 열정과 영감을 받아 여러분만의 창조적이고 품격 높은 사진을 찍어내는 데 큰 도움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