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진정한 성스러움이란 현실적 삶을 경멸하지 않으며, 인간적인 사랑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신비주의자란 세상의 모든 것이 신성한 빛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알리사는 천상에 대한 동경보다는, 지상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지드가 비판하는 알리사의 또 다른 오류는 고통과 비애에 대한 갈망이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욕망을 스스로 박탈하는 기이한 염원을 지니고 있는데. 이 염원은 그녀에게 있어서 정신적 삶의 원칙이며 종착점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알리사의 실패한 삶을 통해, 신성함이란 결코 값비싸게 치러야 할 의무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찾아야 할 기쁨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결국 알리사가 헛되이 찾으려 했던 신성함이란 인간적 사랑을 통해 육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의지적이고 금욕적이어서 진정한 성스러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녀가 숭배하는 신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그녀의 신앙에는 언제나 슬픔이 배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서 환희를 외치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고 있지만, 스스로 그 환희를 체험하지 못한 채 죽어간다.
이렇듯 지드는 알리사의 청교도주의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은 결코 조롱이나 조소가 아니다. 그는 이 작품을 써나가는 동안 젊은 시절의 종교적 열정과 이상을 다시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알리사를 아름답게 그렸다. 그런 까닭에 작가 자신이 일기에서 고백한 바와 같이, 독자인 우리도 이 작품을 대할 때마다 번번이 비장한 아름다움에 전율하는 것이다. ---「작품 해설」
“내가 오빠를 바로 이해한 거라면, 오빠는 알리사의 추억에 충실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그보다는, 알리사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에 충실하려는 거겠지…… 아니, 그렇다고 내가 무슨 장한 일이나 한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나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 내가 딴 여자와 결혼하더라도, 난 그 여자를 사랑하는 척할 수밖에 없을 거야.”
“아!” 그녀는 별 관심이 없는 듯이 대꾸했다. 그러고는 내게서 얼굴을 돌리고서, 무슨 잃어버린 것이라도 찾으려는 듯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랑을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 쥘리에트.”
“그리고 삶의 거센 바람이 나날이 불어 닥쳐도, 그 사랑의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저녁 어스름이 잿빛 밀물처럼 밀려와 사물 하나하나를 어둠에 잠기게 했고, 그 어둠 속에서 사물들은 되살아나 나직한 목소리로 자신의 지난날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는 알리사의 방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쥘리에트가 그 방의 가구들을 모두 이곳에 모아두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다시 내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너무 어두워 그녀의 얼굴 윤곽을 뚜렷이 볼 수 없었기에, 그녀가 눈을 감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몹시 아름다워 보였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자! 이젠 잠에서 깨어나야 해……”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가 일어나 한 걸음 내딛더니, 힘을 잃은 듯 옆 의자에 다시 주저앉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램프를 들고 하녀가 내려왔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