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이다. 우울증은 내 머리에 쉬이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 모양이었다. 그것은 질문이었다. 웃음이 멈추면 하나의 질문이 집요하게 파고들었지.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아들아, 나는 너에게 고백해야만 한다. 빛나도록 행복했던 그 시절, 아빠만 바라보던 널 눈에 넣어두고도, 나는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산다면 우리는 사는 것일까?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은 무모한 용기를 내기도 한다. 마흔 살이 되던 해 어느 날 문득, 나는 국경없는의사회에 지원했다. (…)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보기를 원했던 것일까? 아빠의 토사물을 뒤집어써 에볼라에 걸린 아이. 그 조숙한 눈동자로 아이가 본 것, 그것은 죽음이었겠지. 나를 위험한 구호 현장으로 잡아끈 것도 바로 죽음이었다.
--- p.17, 「아들에게 쓴 편지 ─ 세상을 일찍 알게 된 아이에게」 중에서
나는 죽음이 두려워졌다. 그전까지 나는 죽음을 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의사 생활을 하면서 앓다가 죽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는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보건소나 동네 의원에서 진료할 때는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상급 병원으로 보낼 수 있었다. 내 뒤에는 언제나 촘촘하게 짜인 최첨단 의료 체계와 뛰어난 의사들이 있었다. 황량한 아르메니아 북부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직감했다. 이곳에서 죽음이 장식을 벗고 민얼굴을 드러내리라. 그것이 나는 두려웠다.
--- p.31~32, 「오직 시간만이 알려주는 것」 중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알베르트의 행동은 그런 이론으로는 전혀 설명할 수 없었다. 그에게 죽음의 공포는 통하지 않았다. 집과 국립결핵병원과 아들은 그에게 죽음을 뛰어넘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 분명했다. (…)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집에 있었다면 알베르트는 더 평화롭게 존엄을 지키며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국립결핵병원에 갇힌 환자가 아니라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로 기억되길 원했던 것은 아닐까?
--- p.36~39, 「무엇이 존엄을 지키는 길인가」 중에서
그의 집을 세 번째로 방문한 날, 육신이 타버리고 남은 재만 내려앉은 것처럼 에드가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CT 검사 결과를 설명했다. 그리고 다음 주 내성 결핵 위원회에서 치료 실패를 제안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의 몸은 더는 결핵약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어떤 소식을 가져왔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제 그의 눈썹에서조차 어떤 의지도 느낄 수 없었다. 그가 누운 채로 힘겹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 나는 그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그가 더 살기를 원했고, 기꺼이 에드가가 되어 9개월 동안 그의 의지대로 살았다. 나는 에드가를 연기하는 배우가 된 것 같았다. 아르메니아가 허락하는 만큼 우리는 삶에 집착했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와 나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생은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악수를 하고 조용히 운명을 받아들였다.
--- p.53~55, 「살고 싶다는 욕망은 어디까지 허락되는가」 중에서
내가 원한 것은 단 하나, 게보르그가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 것이었다. 게보르그에게도 그런 자격은 있지 않겠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고통이 없어야 한다. 고통은 환자와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을 너무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존엄을 지키며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연명 치료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에서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의료 행위조차 ‘무의미’했다. 한쪽에서는 낭비가 문제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꼭 써야 할 돈도 없었다. 마침내 응급실과 아르메니아를 떠돌던 내 분노는 불공평하게 갈라진 세상으로 번졌다. 그러나 세상이 내 화를 받아줄 리 없었다. 세상은 분노로 움켜쥘 수가 없다.
--- p.110~112, 「다만 그가 누워서 잠들 수 있기를」 중에서
트리폴리에서 총소리를 들으며 나는 참으로 길었던 어린 시절의 그 밤을 떠올렸다. 오래 부정했지만, 내 속에는 아이가 있었다. 존재를 부정할수록 그 아이는 힘이 강해져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는 했다.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면 누구에겐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로부터는 도망쳤다. (…) 자정이 넘도록 부모가 싸우던 그날, 나는 두려웠다. 우리 집이 평화롭기를, 부모님이 서로 사랑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잠들지 못하던 소년은 철이 일찍 들었다. 불가능한 것을 바라느니 소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이었다. (…) 왜 소망과 공포와 증오는 함께 생겨나는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단 한 번도 이른 적이 없던 낯선 곳에 닿았다. 나의 부모도, 서로에게 비난과 침묵을 쏘아대던 그들도 행복을 갈망했을까?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 p.139~140, 「갈라진 세계」 중에서
하루는 배가 아프다며 찾아온 소년을 현지인 의사가 진찰하고 있었다. 나는 소년의 기록을 살펴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열두 살짜리의 몸무게가 겨우 20킬로그램이었다. 너무 작고 말라서 훨씬 어린 줄 알았다. 그는 쑥쑥 커야 할 성장기의 소년이었다. 똑같이 열두 살인 큰아들이 생각났다. 무엇이든 잘 먹는 녀석은 벌써 40킬로그램이 넘었다. 우리는 소년에게 복통약 이외에 비타민과 구충제도 주었다. 아이의 고통은 기생충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나는 국경없는의사회 사회사업가에게 그 소년을 어린이 구호 활동 단체와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소년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했다. (…) 에드가, 가릭, 아람 그리고 게보르그. 아르메니아에서 만난 결핵 환자들은 대부분 돈이 없었다. 나는 통장의 돈을 찾아서 그들에게 쥐여주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무력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것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중년 남성을 사회사업가에게 연결해주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뒤로 그가 도움을 받았는지는 듣지 못했다.
--- p.143~144, 「나는 과연 살리고 있는가」 중에서
문득 나는 깨달았다. 꽤 오랫동안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고 묻지 않았다. 질문에 해답을 얻어서가 아니었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그런데 트리폴리에 6개월 동안 머물렀던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였다. 나는 우리로 살았다. 트리폴리 위험 구역에서는 총격전과 죽음, 슬픔과 분노를 통해 새로운 ‘우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한곳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어찌나 강한지 개인은 무기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진다면 더 넓은 우리도 가능하다. 너무 늦기 전에 그 방법을 찾아야 한다.
--- p.184, 「무엇이 우리를 만드는가」 중에서
그때 내 기억은 시간보다 빠르게 흘렀다. 죽음을 목격한 환자들, 그들과 연결되었던 격렬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경계가 사라진 그때 나는 분노도, 슬픔도, 무력감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것을 느낄 내가 그곳에는 없었다. 고통만이 있었고 그것을 줄이기 위한 행동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환자는 정신을 잃은 채 간이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나는 물티슈로 환자의 얼굴과 몸을 닦았다. 깨끗한 기저귀와 바지도 입혔다. 서서히 빛은 약해졌고 눈도 부시지 않았다. 나는 시에라리온의 천막 병동 안에 있었다. 다음 날 환자는 시신이 되어 들것에 실려 나갔다. 그녀가 떠나는 순간에 존엄을 지켰기를, 인간으로 남았기를 나는 바랐다.
--- p.208~209, 「아픔 속으로 나는 사라졌다」 중에서
“Uncle! please, give me water(아저씨, 물 좀 주세요).” 아이는 영어로 물을 달라고 했다. 그 말이 내겐 살려달라는 말보다 더 아팠다. 수액이 이미 들어가고 있었지만, 오마르의 입술은 하얗게 뜨고 갈라졌다. 나는 아이를 앉히고 물컵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열이 체액을 모두 날려버린 것처럼 그의 몸은 뜨거웠다. 몇 모금 마시다 말고 오마르가 고개를 뒤로 떨구었다. (…) ‘더는 엉클이라고 불릴 수 없는 것일까?’ 오마르는 다시는 누군가를 부를 수 없으리라. 순간 서러운 감정이 북받쳤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내가 죽음에 이끌린 이유를. 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목소리에 이끌린 것이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살아야 했다. 살아서 이곳에 와야만 했다. 오마르가 엉클을 찾을 때 그 앞에 있어야 했다. 기꺼이 그의 엉클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고통에, 살고 싶다는 열망에 응답해주어야 했다.
--- p.229~232, 「‘엉클’을 찾는 아이」 중에서
문득 하나의 반성이 스쳐갔다. 그랬구나.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갈망한 것은 바로 나였구나. 시에라리온에 오기 전, 환자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연민과 분노로 목 놓아 울었다. 그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이런 내가 죽은 자들을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그것이 나는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없다면 상처도 없다. 장미를 그리는 이브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나는 파티마타가 되어 살아갈 것이다.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지워질 장미를 그리리라. 그렇게 우리는 운명에 맞설 것이다. 우리는 죽음보다 강해져야 한다.
--- p.248, 「우리는 운명보다 강해져야 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