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끝없이 생성되면서 소멸되는 특이한 괴물이다. 이 소설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장은 이루어지자마자 지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모든 이야기는 언제 그런 이야기가 있었냐는 양 꼬리를 감추고 다시 변형되어 생성한다. 그렇다면 작가의 생각은? 작가의 사유는 이 특이한 괴물의 미궁(몸-텍스트)에 영원히 갇혀 맴을 돌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 괴물 자체의 형식이 그의 사유일 것이다. 이 반복되고 지워지고 사라지는 형식이야말로 소설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작가는 멈출 수 없이 계속 다시 쓰는 운명을 선택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준규(시인)
이것은 외로운 전쟁이다. 빛의 속도만큼이나 분주해진 문학과의 전쟁이다. 문장 하나하나에 천 번의 담금질이 담겨 있다. 이때껏 우리에게 이런 문학이 있었던가. 고독하며, 질기고도 질긴 울음이 새겨져 있다. 우리 이제 한 번쯤은 솔직해지자. 그동안 우리들이 외면하고 부인했던 문학의 순수함을. 문학은 그림으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나노 기술로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단어와 단어의 조합, 문장과 문장의 배치, 문자와 사유의 결합체임을. 문학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오직 문자밖에 없음을. 숨김없이, 남김없이 보여주는 순수함의 결정체를.
박성원(소설가)
언제나 기다려왔고, 언제고 그 기다림을 중지하고 싶었다. 따옴표로 가둘 수 없는 말들, 괄호로 가릴 수 없는 말들, 누구나 들을 수 있으나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들, 그것들이 오늘 내게로 왔고, 긴 기다림의 눈을 소란한 침묵과 고요한 수다로 감겨주었다. 그러니 눈으로 보지 말고 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숨김없이, 남김없이. 그렇게 언어의 얼굴이, 아니 얼굴의 언어가 드러난다. 나와 당신이 말할 수 없었던 것들, 그(것)들을 우리는 여기서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당신들도 눈을 감지 않겠는가, 뜨지 않겠는가. 숨죽이고서, 그(것)들의 혀를 자유로이 놀릴 수 있도록…….
한유주(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