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날부터》는 자유로운 도시 파리에 사는 두 여자, 엘리즈와 델핀. 타협도, 의무도 없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던 파리지엔 엘리즈와 델핀은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슬슬 결혼이라는 대열에 합류할까 하고 고민 중이다. 하지만 가정과 자유, 너무 모순 아닌가?
아무튼……. 그녀들은 같은 시기에 연애를 시작한다. 공교롭게도 그녀들의 애인들 역시 친구 사이다. 공교롭다기보다 엘리즈가 남자 친구의 친구를 델핀에게 소개시켜주었으니 다분히 계획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결성된 연인 4인방은 파리의 연인들답게 사유하고 대화하며, 먹고 마시며 즐거운 연애를 즐긴다.
하지만 연애를 하다 보면 남녀 사이엔 언제나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다. 이럴 경우 결론은 세 가지다. 문제를 극복하고 결혼을 하거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거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결혼하거나. 이 세 가지 결론 앞에 선 엘리즈와 델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작가인 엘리즈의 애인 시몽은 현실적인 남자다. 세심하고 친절하고 정직하며 다정하고 지적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능력도 있어 결혼상대로는 그야말로 완벽하다. 하지만 엘리즈는 그의 완벽함이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동거는 좋지만 결혼은 걱정되고, 잠자리에서 여자친구의 과거를 묻는 남자를 경멸하고, 바지 다림질을 시키는 남자보다 자신을 위해 바지를 벗는 남자를 선호하는 엘리즈에게 시몽의 현실적이고 평범한 완벽함이 재미없을 수밖에. 혼자 있을 때보다 그와 함께하는 것이 더 지루하니 정말 미칠 노릇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예전에 사귀던 남자들의 괴상스러운 장점, 예를 들어 셀린 디옹보다 더 많은 구두를 갖고 있다거나 호모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섬세하다거나 드라마를 좋아해 자신과 여섯 시간 이상 드라마에 관해 토론할 수 있다거나 하는 장점들이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결국, 그녀는 시몽과 이별하기로 결론을 내린다.
“시몽, 난 당신의 장점이 정말 지긋지긋해!”
그녀의 연애는 이렇게 끝나는 걸까?
한편, 델핀의 애인은 라디오 방송국 사장 바르나베다. 바르나베는 120킬로그램의 거구에 불만투성이 골초 비평가다. 그는 진정제 렉소밀을 애용하고, 자신의 못된 성격과 진한 커피, 시골, 요리, 친구들을 좋아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르 주르날 뒤 디망쉬> 읽는 것을 즐긴다. 반면 델핀은 연한 커피, 포도주, 도시 생활, 만찬, 멋진 옷, 프랑수와즈 사강과 프레드 바르가스를 좋아한다. 그 둘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도 델핀은 자신과 너무나 다른 바르나베를 사랑한다.
하지만 가족 모임에 애인을 데려오라는 엄마의 말에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남의 의견에 반박하고, 식탁에서 예의 없이 기침을 해대는 뚱보 골초를 어떻게 가족에게 소개하겠는가? 결국 그녀는 가족들과의 저녁 모임 딱 하루만 ‘대리 애인’을 활용하기로 결정한다.
“양다리를 걸치는 것도 아니고, 그가 그렇게 뚱뚱하고 비사교적인 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의 잘못이잖아.”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지만 델핀은, 혹시라도 이 사건으로 사랑이 깨질까 봐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