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야곱은 ‘발꿈치를 잡은 자’라는 이름을 가진 꾀 많은 인물로, 그의 ‘강함’은 거의 치명적인 ‘약함’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기 성품 속에 정복되지 못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인생의 3분의 2를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본 영광스러운 환상도, 하란에서 오랫동안 겪은 쓰라린 연단도 해로운 그 강함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응용 심리학에 능통했던 이 기민하고 똑똑한 노인은 해질 무렵 얍복 강가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값비싼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가 보여준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만들다가 망친 그릇 같았습니다. 그의 소망은 패배에 있었습니다. 그는 해질 무렵에 몰랐던 이 사실을 다음날 해 뜨기 전에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자비하심으로 그의 허벅지 관절을 치시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실 때까지 그는 밤새 저항했습니다. 그렇게 굴욕스러운 패배를 겪고 나서야 악한 강함에서 해방되는 기쁨, 하나님께 정복당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는 큰소리로 축복을 구하며, 축복하시기 전에는 놓아 드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긴 싸움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야곱은 그런 수고를 들일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그 이유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는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완고하고 고집 센 반항아에서 온유하고 기품 있는 하나님의 벗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상 그의 승리였습니다. 그 승리는 강함이 아닌 약함을 통해 왔습니다.
---「4장. 패배를 통한 승리」중에서
성령 충만한 삶에 대해 배우려고 우리를 찾아온 탐구자, 열성적인 젊은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합시다. 우리는 이 질문의 날카로움을 고려하여 최대한 부드럽게 물어봄으로써 그의 영혼을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예수와 같은 온유와 사랑을 가지고 계시지만, 동시에 당신 삶의 주인이 되길 요구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해지길 원하는 것이 확실합니까? 당신이 아닌 다른 존재, 더구나 하나님의 성령께 기꺼이 당신의 인격을 맡기겠습니까? 일단 당신의 삶을 맡기면 모든 일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기대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허용해 주고 양해해 주는 자아의 죄를 용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아의 죄란 자기애, 자기 연민, 자기 추구, 자기 확신, 자기 의, 자기 강화, 자기 방어를 가리킵니다. 당신은 성령이 세상의 쉬운 길, 신앙의 영역 안에 섞여 있는 많은 무리의 쉬운 길과 날카롭게 대립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는 당신을 놓고 영원히 질투하실 것입니다. 당신 삶의 주도권을 가져가실 것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위해 시험하고 훈육하며 훈계하는 권리를 행사하실 것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이 즐기는 쾌락들, 그러나 당신에게는 세련된 악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경계선상의 쾌락들을 빼앗아 가실 수도 있습니다. 성령은 이 모든 일을 통해 상실이 유익으로, 작은 고통이 쾌락으로 보일 만큼 크고 강한 사랑, 모든 것을 품으시는 놀라운 사랑으로 당신을 안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멍에를 진 육신은 불평할 것이며, 짐이 너무 무거워 감당키 어렵다고 소리칠 것입니다. 당신은 그러한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엄숙한 특권을 누릴 것입니다(골 1:24). 자, 이것이 당신 앞에 제시된 조건입니다. 그래도 성령으로 충만해지길 원합니까?”
---「10장. 성령 충만한 삶」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