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동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고, 1938년 경성 중앙불교 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애련송〉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3·1운동〉(1959), 〈8·15 전야〉(1961) 등 민족의식을 주제로 한 작품을 비롯하여, 견실한 구성과 기교 있는 문체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한국 시나리오 발전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회원이 되었다. 그의 주요작품에는〈산유화〉(1957),〈에밀레종〉(1961), 〈팔만대장경〉(1972) 등이 있다.
김강윤 그는 평생 98편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해 극장에 올렸는데 그 중 57편이 1960년대의 10년 동안 완성된 것이었으니 한국 영화의 황금기가 바로 그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안북도 삼풍에서 태어난 김강윤은 경복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문과로 진학하지만 3학년 때 학업을 작파하고 영화계로 뛰어든다.
그의 시나리오 데뷔작은 나운규와 더불어 한국 영화의 초창기를 개척한 지사 감독 윤봉춘의〈승방비곡〉 본래 일제 시대에『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최독견의 장편소설을 1930년 이귀영 감독이 영화화했던 작품인데 당시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던 윤봉춘이 이번에는 직접 연출 을 맡으면서 그 시나리오를 김강윤에게 맡겼던 것이다. 이듬해인 1959년 김강윤은 일제하의 광주학생운동을 다룬〈이름 없는 별들〉을 연출함으로써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는 1964년에 신상옥의〈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 1970년 정진우의〈마지막황태자 영친왕〉, 1981 년 정진우의〈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등이 있다.